1919년 말 이탈리아계 미국인 찰스 폰지(1882~1949년)는 보스턴에 증권거래회사를 차렸다. 주거래품목은 세계 각국에서 우표로 교환해 쓸 수 있는 국제우편 쿠폰.나라마다 우편요금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사업이었다. 예컨대 이탈리아에서 쿠폰을 싸게 산 다음 미국에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얻는 구조였다.

문제는 45일에 50%의 수익을 보장하며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초기엔 약속대로 꼬박꼬박 수익금을 나눠줬다. 그걸 보고 투자자들이 구름 처럼 몰렸다. 예금을 빼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4만여명이 1500여만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폰지는 약정 수익률을 맞출 도리가 없었다.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충당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일종의 돌려막기였다. 결국 이듬해 8월 신문에 폭로되며 실상이 드러나고 말았다. 다단계 금융사기인 '폰지 사기'의 원조다.

그로부터 88년 후인 2008년에는 월가에서 희대의 폰지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사기 액수는 무려 650억달러에 달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연방 상원의원 등과 함께 HSBC 노무라증권 등 쟁쟁한 기관투자가들까지 속아 넘어갔다. 월가의 거물이 연 8~12%의 '적당한 수익'을 제시했으니 의심하기도 어려웠을게다. 금융위기 여파로 대량 환매요청이 없었다면 사기 행각은 훨씬 오래 갔을 것이라고 한다.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학습효과도 없는 것일까. 이번엔 서울의 한 증권사 과장이 고객 돈 484억원을 돌려막기 수법으로 빼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 주식카페 회원 등 40여명에게 고소득을 보장해주겠다며 지난 몇년간 투자금을 가로챘단다. 신규 투자자에게서 받은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는 식의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 회사의 법인계좌가 아닌,개인 계좌로 투자금을 예치한데다 증권사 과장이라는 신분 덕에 의심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폰지 사기 사건이 자꾸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나 지금이나 고수익에 눈먼 투자자가 시장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돈은 노력한 만큼만 벌리게 돼 있다. 수익률이 높으면 위험도 높게 마련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대로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