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종교.역대 어느 정부도 종교와의 갈등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갈등 요인은 다양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엔 주로 민주화가 불협화음의 고리가 됐다. '불교정화'로 부딪친 적도 있다. 특정 정권에서 특정 종교가 부각되면서 마찰이 심화되기도 했다. 최근엔 국가 정책이 교리와 교계 이해에 어긋난다며 종교계가 대통령 하야를 언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헌법 제20조 1,2항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돼 있으나 종교의 정치 개입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역대정부 갈등 사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하느님과 동포 앞에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맹서한다"고 했다. 1954년 시작한 대대적인 불교정화운동은 대처승(결혼한 승려) 축출이 핵심이었는데 불교계의 엄청난 반발을 샀다. 천주교와도 갈등을 빚었다. 경쟁자였던 장면 당시 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던 것과 무관치 않았다. 4 · 19혁명이 일어나자 이 전 대통령은 "장면과 천주교 노기남 주교의 공작"이라는 주장까지 할 정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교였으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불교신자였다. '불교재산관리법'을 만들어 불교를 통제하기도 했지만 친불교적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천주교와 가장 큰 갈등을 빚었다. 1974년 7월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결성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기독교 신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10 · 27 법란'이 일어났다. 1980년 10월27일 신군부 세력은 불교계 정화라는 명목으로 조계종 승려 등 불교계 인사 153명을 강제 연행했다. 전국의 사찰과 암자 5000여곳에 군과 경찰 수만명을 투입해 수색했다. 당시 조계종 월주 총무원장이 신군부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었다. 법난 당시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를 만회하고자 집권 후 불교계와의 화해에 주력했다.

장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8년 대선 당시 "청와대에 찬송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에 예배실을 마련했고 불교계는 '종교편향 대책위'를 만들어 불만을 표출했다. 세례명이 토머스 모어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몇 차례 미사에 참석했으나 종교와 관련된 큰 갈등은 없었다. 세례를 받았으나 무교라고 밝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립학교 개정 문제로 기독교계와 갈등을 빚었다.

◆MB정부도 끝없는 마찰

현 정부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와도 얼굴을 붉혔다. 불교계와 가장 큰 각을 세웠다.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2004년 서울시장 시절 한 기도회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말해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현 정부 초기 교통정보시스템에 사찰을 누락시켜 불교계의 신경을 건드렸고 경찰이 2008년 7월 촛불시위 때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검문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종교 편향 논란이 거셌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템플스테이 예산을 삭감해 홍역을 치렀다. 이 대통령의 '우군'이었던 개신교마저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천주교와는 4대강 사업을 두고 대립각이 서 있다.

◆"종교, 정신적 물음에 집중을"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데 대해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최성환 중앙대 철학과 교수는 "국가원수가 특정 종교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종교는 정신적 물음에 치중해야 하고 정치는 국민의 현안 · 생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대통령이 조찬기도회에 가서 무릎을 꿇은 데 대해 민감하게 볼 필요는 없다"며 "다만 종교적인 색채를 너무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홍영식/이준혁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