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을 보고 예술이 아니라 수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 대답은 늘 간결하죠.엘 그레코의 종교화는 예술인가 신학인가,시스틴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누드화는 예술인가 해부학인가'라고 되묻고 싶거든요. "

오는 9일부터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기 위해 방한한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70 · 사진).패셔너블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그는 "미술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넘어 과학이나 수학과 연관을 맺고자 하는 서구 예술 경향의 단면을 제시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회화,조각,퍼포먼스,사진,영화,음악,무용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미국 현대 미술과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의 영향을 받아 혁신적인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에는 무거운 철을 이용해 연필로 드로잉을 하듯 자유로운 선을 보여주는 등 추상 조각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내달 1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1960년대 초반의 타르 회화를 비롯해 수학 기호나 도표를 차용한 작품,수수께끼 같은 공식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 등 40점을 골라 보여준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일 겁니다. 그러나 1960년대 석탄 더미를 쌓아놓은 작품이나 타르를 뿌린 그림,수학 방정식을 그려놓은 것 등은 다소 난해하지만 중요한 작업입니다. "

그는 "성급한 관찰이나 순간적인 판단은 작품의 본질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며 "미술은 단지 하나의 가능성만을 제시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수학적인 기호로 구성됐다. 암호 같은 그래프와 해독 불가능한 수식 등으로 가득한 작품을 한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관람객의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자 했던 그는 "하나의 의미 외에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단의성(monosemy)'을 그림에 융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호학의 '단의성' 개념을 통해 지식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 작품은 표현적이거나 미적인 요소를 갖지 않고,단일한 의미만 갖는 기호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수학의 개념 중 하나인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지요. "

그는 "현대 미술가들은 마티스,말레비치,뒤샹과 같은 전통적인 미술 화법의 개척자들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미학의 원천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미술이 그동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의 융합 덕분"이라고 얘기했다.

"창조적인 과정은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비롯되지요. 개인적으로 다르거나 낯선 무언가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새롭게 결합시키는 것을 작업의 원칙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