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 작황 부진으로 폴리에스터(PET) 섬유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원료로 쓰는 PET 필름 업체들이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TPA를 생산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국제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대폭 올리고 있지만 중소 · 중견 업체를 주 고객사로 두고 있는 PET 업체들은 정작 원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판매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원료 공급 대기업과 동반성장 논리를 내세우는 중소 · 중견 업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압박'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원료 가격 초강세

6일 업계에 따르면 TPA 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t당 1470달러까지 뛰었다. 작년 6월 평균 가격(825달러)보다 78.2% 급등했다. 작년 12월 가격에 비해서는 26.7% 올랐다.

TPA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세계적으로 면화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대체품인 화학섬유(폴리에스터 섬유)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면화 주요 생산지인 중앙아시아 지역의 면화 공급량이 이상기후 영향으로 크게 줄어든 데다 최대 면화 생산국 중 하나인 파키스탄도 작년 홍수 피해로 생산량이 감소했다. 인도 역시 국내 수요 증가를 이유로 면화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고,중국 면화 농가들은 추가 가격 상승을 예상하며 출하를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 KP케미칼 SK이노베이션 등 TPA 업체들은 생산량의 60% 정도를 중국 등 해외에 수출하고 나머지를 국내에 공급한다.

◆대 · 중소기업 사이에서 전전긍긍

SKC,코오롱,도레이첨단소재,효성 등 PET 필름 업체들은 대기업인 TPA 업체들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PET 필름을 만든 뒤 중간 가공업체인 중소 · 중견 업체들에 판매한다. 중소 · 중견 업체들은 PET 필름을 재가공해 직접 시장에 팔거나 대기업에 다시 납품한다.

문제는 필름 제조원가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TPA를 사용하는 PET 필름 업체들이 원료 가격 상승분을 필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TPA 업체들은 국제 시세에 따라 바로 가격을 올리지만 국내에 유통되는 범용 PET 필름 가격은 지난 1년 새 5% 오르는 데 그쳤다"며 "같은 대기업이지만 갑(甲)인 원료 업체에 항의하기도 어렵고,그렇다고 필름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릴라 치면 '대기업이 폭리를 취한다'고 항변하는 중소 · 중견 업체들의 눈치를 보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대 ·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데다 전방위 물가관리까지 나서고 있는 것도 필름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TPA 가격 인상폭은 필름 업체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PET 필름 용도별로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 PET 필름

polyester 필름.석유화학 원료인 TPA를 얇게 가공해 만든다. 산업용,포장재용,태양전지 소재용,광학 디스플레이용으로 폭넓게 쓰이며 흔히 볼 수 있는 음료수병과 비닐봉투의 소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