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술 중 가장 위대한 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미국 작가 윌리엄 펠프스의 얘기다. 왜 아니랴.해로한 할머니에게 천생연분의 다른 말은 '평생 웬수'고 '바다에선 일 주일,전쟁터에선 한 달 기도하면 되지만 결혼을 위해서는 평생 기도해야 한다'는 마당이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 이상 함께 살고도 삐걱거리기 일쑤인 게 부부 사이다. 애당초 다른 별에서 왔다는 남녀가 만난 탓일까. 부부 모두 서로 알 만큼 알고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 웬만한 일은 이해한다 싶다가도 어느날 문득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간극 앞에서 막막해진다.

답답한 마음과 울화를 참고 지나가게 만드는 힘은 '상대도 마찬가지겠지'란 생각이다. 부대끼는 동안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는 일들이 생기고 안쓰러운 대목도 늘어난다. 얼굴의 주름살과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도 그렇지만 자존심 상했을 게 뻔한 일을 감추려 드는 것도 안쓰럽다.

벌컥 화를 내놓곤 미안해 하는 것도 안쓰럽고,자신은 물론 자식에게 걸었던 꿈과 기대를 접고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도 안쓰럽다.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언짢았던 일은 가급적 잊으려 애쓰면서 살아가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83)이 동갑인 부인 손명순 여사와 회혼식(回婚式)을 가졌다고 한다. 말이 회혼식이지 60년을 함께 살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손 여사의 경우 결혼하면 대학을 그만둬야 하던 상황에서 결혼과 임신을 숨기고 졸업장과 약사 자격증을 땄음에도 불구,평생 남편 뒷바라지만 하며 지냈다.

정치인의 아내 노릇은 쉽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YS의 경우 대통령 시절 여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우리집 사람은 솥뚜껑 운전사라 아무 것도 모른다"며 영부인의 말을 막았을 만큼 가부장적 색채가 짙었다. 퇴임 후엔 두 차례나 친자 확인 소송을 당했고,지난달엔 결국 50대 아들을 인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그가 회혼식에서 "오늘의 김영삼이 있는 건 제 아내 손명순의 한결 같은 사랑 덕택이었다"며 "참 고맙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손 여사의 속은 알 길 없다. "20대엔 좋아서,30대엔 정신 없어서,40대엔 못 버려서,50대엔 가엾어서,60대엔 고마워서,70대부턴 등 긁어 줄 사람이 필요해 살았다"고 할지.어쨌거나 웃었다. 결혼했으면 미우나 고우나 60년쯤 살아보라는 듯이.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