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전략 비축유 방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만큼 유가 오름세를 심상치 않게 본다는 얘기다.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6일 미 NBC방송에 출연해 유가 상승에 대한 대응책과 관련,"여러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전략 비축유 방출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축유 방출은 매우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 "단순히 가격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수를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에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전 세계의 석유생산 여력이 충분하고,비축유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의 제이 록펠러 의원도 이날 "국가안보 차원에서 비축유를 제한적으로 방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국제유가는 4일 배럴당 104달러로 올랐다. 미국 내 2500개 주유소의 휘발유 소비자가격을 조사하는 룬드버그 서베이에 따르면 이날 가장 낮은 등급 휘발유(regular)의 평균 가격은 갤런당 3.50달러(ℓ당 1027원)였다. 지난달 18일에 비해 32.7센트 상승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11일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11달러까지 급등한 적이 있다. 당시 석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로 치솟은 영향이 컸다.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원인이 다르다. 석유 공급이 불안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반정부 시위 탓에 하루 평균 수출 물량이 600만배럴에서 60% 수준으로 줄어든 리비아는 석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그러나 리비아 사태와 같은 반정부 시위가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옮겨 붙어 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폭등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이 상당하다.

더욱이 미국 경제는 겨우 회복 궤도에 올라섰다. 내년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유가 불안을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 JP모건의 석유담당 수석 애널리스트인 로렌스 이글스는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 미 정부가 비축유를 시중에 풀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브렌트유는 지난 4일 배럴당 116달러로 2주 전보다 13% 뛰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전략 비축유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비상 방출하기 위해 비축한 원유.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973~1974년 대미 석유수출을 중단한 것을 계기로 전략 비축유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 세계가 10일 정도 쓸 수 있는 총 7억2700만배럴의 석유를 분산 비축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