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6일과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추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그만큼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회의에서 수석들은 '입법로비'를 허용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할 경우 맞게 될 민심의 후폭풍에 대한 우려를 집중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선 거부권 행사를 언급하며 국회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신중히 처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는 다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법은 정중했으나 사실상 국회에서 재논의해 정치자금법 개정 작업을 '없었던 일'로 해달라는 메시지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트위터에서 "정치도 자신의 눈이 아닌,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 법안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라며 여야의 행태를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수석회의에서 거부권 행사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청와대 저변의 기류는 강경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부 일각에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이란 단서를 단 것은 당장 행사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이관된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해 정부로 넘어오지 않도록 사전에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동안 법안 처리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며 가급적 언급을 자제해왔던 청와대가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 정부 들어 한번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청와대가 이 사안을 얼마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전한 당 · 청 간 소통 부재"

청와대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정운영의 핵심 화두인 공정사회의 기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급입법 성격인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게 무슨 공정사회냐'는 비판의 화살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아올 수 있다.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사후 면죄부를 주게 되면 집권 4년차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이 된다. 청와대도 정치권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보고 있던 차에 주말을 거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도 강경 대응의 한 원인"이라고 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상이 340만원의 소액을 받고도 외국인의 정치헌금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사임한 것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정치자금법의 행안위 처리와 관련,여당으로부터 사전 보고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여당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무시했다" "당 · 청 간 소통이 여전히 안 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