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게 뻔한데 난들 총대를 메고 싶었겠나. 청목회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동료 의원들의 압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재선 의원)

여야가 지난 4일 국회 행안위에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들끓자 한 의원은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공청회 등 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지만,주위에서 '어차피 욕먹을 것 이번에 처리하자'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들도 '욕먹을 짓'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법안 처리 후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달 중 청목회 로비사건으로 기소된 여야 의원 6명에 대한 1차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법 개정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방탄 입법''입법권 남용' 등의 비판이 거세다. 법안 처리에 참여한 의원 중 일부는 이 문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법안 처리 후 여론이 악화되자 여야 지도부는 "3월 중에 꼭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아니다"며 한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반성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여야 지도부와 상당수 의원은 "현 정치자금법은 귀에 걸면 귀고리,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라며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한 의원은 "소액 다수 후원 활성화 취지와 달리 검찰이 마음 먹고 청목회 기준으로 적용하면 안 걸릴 의원이 없다. 모든 국회의원이 칼날 위에 서 있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한 의원은 "의원들만 나쁘게 보지 말고,입법 취지를 잘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변했다.

의원들의 이 같은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 개정안은 절차나 시기 모두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대세다. 찬성하는 의원들조차 "이런 졸속 처리방식은 안 된다"고 지적한다.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군사작전하다시피 기습적으로 법안을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판을 앞두고 관련 법을 고치는 것은 입법권의 남용이다. "정치권의 뻔뻔함이 막가파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새겨야 한다.

김형호 정치부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