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지난 4일 기습적으로 통과시킨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큰 물의를 빚자 법안 처리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자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 행사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결국 여야 지도부가 3월 국회에서 강행처리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한 발 물러서고,어제 법사위에서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국민 정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당장 철회돼야 마땅하다.

이번 개정 법안이 갖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공연히 입법 로비를 부추김으로써 국회의원들이 대놓고 입법 장사를 하겠다는 얘기이자,이미 기소 중인 동료 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입법권의 횡포다. 무엇보다 법안 처리를 위한 제대로 된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행안위 위원들이 아무런 예고없이 전체회의에 상정했을 뿐 아니라,비공개로 숨어서 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10분 만에 만창일치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의 야합이자 스스로 떳떳지 못한 행태임을 자인한 것이다.

법안 처리의 시점도 그렇다. 당초 예정대로 본회의에서 통과된다면 '청목회'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여야 의원 6명은 기소 근거가 없어져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동료 의원을 구하기 위한 소급입법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산적한 민생법안은 팽개쳐 놓은 채 제 잇속 챙기는데는 이처럼 여야 의원들이 재빠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번 개정안이 시대적 과제인 정치개혁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임은 두말할 게 없다. 2004년 3월 개정된 현행법의 규제가 심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으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현행법에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폭넓은 국민여론 수렴과 합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무엇보다 국회 행정안전위는 문제가 되고 있는 청목회의 로비대상이었던 만큼 법률 개정에서 손을 떼고 정치개혁특위 등에 임무를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차제에 이익단체의 로비를 합법화할 수 있게 로비스트법(가칭)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