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배 부분의 그림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면 비만이다. 자신의 뺨을 세게 쳐본다. 찰싹 소리 대신 철퍼덕 소리가 나면 비만이다. 우향우를 했을 때 몸통 돌아가는 시간과 뱃살 · 엉덩잇살 돌아가는 시간을 재본다. 차이가 나면 비만이다. 번지점프를 할 때 2차 충격을 느껴도 비만이다. 한때 유행했던 '비만 측정법'이란 유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대인들은 비만은 고사하고 과체중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 당뇨병 심장병 대장암 등 온갖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탓이다. 여기에 날씬한 몸매 바람도 한몫한다. TV에선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비쩍 마른 몸매의 배우들조차 "깜빡하면 망가진다"며 은근히 겁을 주기 일쑤다. 특히 젊은층의 다이어트는 거의 맹목적 수준이다. 얼마전 대학생 17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여학생의 84%가 '다이어트를 경험했거나 하고 싶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하지만 살 빼는 것도 봐가면서 해야 할 모양이다. 아시아인들은 살이 좀 붙었어도 장수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진이 한국인 2만명을 포함한 아시아인 114만명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평균 9.2년을 추적 관찰한 결과다. 보통 체질량지수(BMI ·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23 이상이면 과체중,25 이상이면 경도 비만,30 이상이면 중등도 비만으로 친다. 주로 미국 유럽 등 서구인에 대한 연구조사를 근거로 한 분류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한국 · 중국 · 일본인은 체질량지수 22.6~27.5일 때 사망 확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체질량지수 15 이하의 저체중인 경우 사망 확률이 지수 22.6~25인 사람에 비해 2.8배나 높았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우리 체질이나 체형에 맞는 비만기준을 다시 만들자고 제안한다.

물론 살찌는 것을 방치하란 뜻은 아니다. 심한 비만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대다수 국민이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이는 것또한 정상은 아니다. 이왕이면 인종 간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체중 기준을 빨리 개발해 냈으면 한다. 그래야 너도나도 날씬하다 못해 피골이 상접한 몸매를 꿈꾸는 기이한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 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