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포퓰리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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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고속도로 무료화'를 처음 정치적으로 공약한 건 간 나오토 총리였다. 그가 민주당 대표이던 2003년 고속도로 무료화를 당의 선거 공약에 넣었다. 당시 간 대표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무료화하면 관광객이 늘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물류비를 절감해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6월 총리에 취임한 직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경기 진작을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면 10년이 걸리지만,고속도로 무료화는 3개월이면 된다. " 침체된 경제를 고속도로 무료화로 되살리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 고속도로 무료화가 간 총리의 퇴진 위기를 촉발한 건 아이러니다. 간 총리는 집권 후 재정 악화 때문에 고속도로 무료화, 자녀 수당 지급 등 대표적인 '무상 공약'을 수정키로 했다. 고속도로 완전 무료화를 위해선 연간 1조3000억엔(17조5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재정난으로 올해 예산안엔 10분의 1도 안되는 1200억엔밖에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상 공약의 수정에 당내 최대 계파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그룹이 강력 반발하면서 그는 벽에 부딪쳤다. 오자와 그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총리는 필요 없다"며 간 총리의 퇴진을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여당의 분열에 자민당 등 야당은 "재원도 확보하지 못한 무상 공약을 당장 철회하고,국회를 해산한 뒤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라"며 간 총리를 몰아 붙이고 있다.
'무상공약을 지키라'는 여당 내 압력과 '철회하라'는 야당의 압박 사이에 낀 간 총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의 정치자금 문제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속출하면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일본 국민의 절반은 여론조사에서 '간 총리의 퇴진'에 표를 던지고 있다. 간 총리는 자신이 만든 고속도로 무료화 등 무상공약이 결국 이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간 총리 직전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자신이 내뱉은 선심성 공약 때문에 결국 총리직에서 9개월 만에 내려왔다. 그는 2009년 '8 · 30 총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를 해외 또는 최소한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지 이전이 숙원이었던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기지에 부정적인 여론을 겨냥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었다.
하지만 미 · 일 동맹을 훼손할 수 있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하토야마 전 총리는 결국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밖 이전을 포기했다.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고,마침내 총리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평론가들은 "하토야마 전 총리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겠다"는 말만 안했어도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훨씬 길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장의 표에 눈이 어두워 실현 가능성도 없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것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덫이 된 셈이다.
포퓰리즘의 더 큰 문제는 선거 전 공약과 당선 후 수정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정책혼란과 잦은 정권 교체가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세종시와 대운하 공약을 둘러싼 수정 논란에서 국력을 소진했던 경험이 있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공약이 정치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건 비단 일본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그는 2010년 6월 총리에 취임한 직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경기 진작을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면 10년이 걸리지만,고속도로 무료화는 3개월이면 된다. " 침체된 경제를 고속도로 무료화로 되살리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 고속도로 무료화가 간 총리의 퇴진 위기를 촉발한 건 아이러니다. 간 총리는 집권 후 재정 악화 때문에 고속도로 무료화, 자녀 수당 지급 등 대표적인 '무상 공약'을 수정키로 했다. 고속도로 완전 무료화를 위해선 연간 1조3000억엔(17조5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재정난으로 올해 예산안엔 10분의 1도 안되는 1200억엔밖에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상 공약의 수정에 당내 최대 계파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그룹이 강력 반발하면서 그는 벽에 부딪쳤다. 오자와 그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총리는 필요 없다"며 간 총리의 퇴진을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여당의 분열에 자민당 등 야당은 "재원도 확보하지 못한 무상 공약을 당장 철회하고,국회를 해산한 뒤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라"며 간 총리를 몰아 붙이고 있다.
'무상공약을 지키라'는 여당 내 압력과 '철회하라'는 야당의 압박 사이에 낀 간 총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의 정치자금 문제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속출하면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일본 국민의 절반은 여론조사에서 '간 총리의 퇴진'에 표를 던지고 있다. 간 총리는 자신이 만든 고속도로 무료화 등 무상공약이 결국 이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간 총리 직전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자신이 내뱉은 선심성 공약 때문에 결국 총리직에서 9개월 만에 내려왔다. 그는 2009년 '8 · 30 총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를 해외 또는 최소한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지 이전이 숙원이었던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기지에 부정적인 여론을 겨냥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었다.
하지만 미 · 일 동맹을 훼손할 수 있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하토야마 전 총리는 결국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밖 이전을 포기했다.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고,마침내 총리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평론가들은 "하토야마 전 총리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겠다"는 말만 안했어도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훨씬 길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장의 표에 눈이 어두워 실현 가능성도 없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것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덫이 된 셈이다.
포퓰리즘의 더 큰 문제는 선거 전 공약과 당선 후 수정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정책혼란과 잦은 정권 교체가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세종시와 대운하 공약을 둘러싼 수정 논란에서 국력을 소진했던 경험이 있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공약이 정치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건 비단 일본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