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월급의 3배 주고 연구원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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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돌 KDI 초대 원장 김만제 씨 "사공일·홍원탁 박사 개원 멤버"
"원장만으로 출범했던 연구기관이 어느덧 아시아 최고의 경제 싱크탱크가 됐습니다. "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초대 원장을 지낸 김만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76)은 8일 KDI가 오는 11일 개원 40주년을 맞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 전 부총리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1970년 본격화한 KDI 설립 작업에도 관여했다. 당시 36세의 나이로 1971년 초대 원장에 취임한 뒤 1982년까지 원장을 지냈다.
KDI는 출범 당시 원장만 있고 연구원은 없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시작했다. 김 전 부총리는 "전문 연구기관을 세워 경제 개발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만 있었을 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 국내에 많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연구원을 모집하기 위해 KDI 개원 두 달 뒤인 1971년 5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주요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홍원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그때 스카우트한 인물들이다.
김 전 부총리는 "당시 서울대 교수 월급이 1만원이었는데 KDI 연구원에게는 3만원을 줬다"며 "유학을 마치고 오는 사람에겐 비행기 삯과 이사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집까지 마련해 주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고 말했다. 그렇게 출범한 KDI는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가 선정한 '세계 75대 싱크탱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시아권의 경제 연구기관 중 75대 싱크탱크에 들어간 곳은 KDI뿐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1970년대 한국경제신문(당시 현대경제일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쓴 것이 KDI 원장으로 발탁된 배경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그는 원래 KDI 원장이 아닌 부원장으로 내정돼 있었다. 그러나 김학렬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KDI 설립 추진 상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직함이 바뀌었다. '부원장은 정했는데 원장을 못 정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이 "부원장이 한국경제신문에 쓴 칼럼을 인상깊게 봤다"며 "저 사람이 그냥 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김 전 부총리는 "KDI는 경제 개발 계획 수립과 정책 입안에 도움을 준다는 설립 초기의 목적은 훌륭히 달성했다"며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활동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정책 자문 역할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년 말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일부 연구 인력이 KDI를 떠나는 것과 관련,그는 "세종시로 내려가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서는 우수 인력 유치에 도움이 되도록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는 KDI 원장에서 물러난 뒤 한미은행 초대 행장을 거쳐 전두환 정부 때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일했다. 이어 포항제철 회장을 역임했고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