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 발행하는 잡지 백그라운더(Backgrounder)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동 재단의 무역정책전문가인 브라이언 릴리(Bryan Riley)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자유무역에 대한 10가지 잘못된 주장들(10 Myths)을 반박한 내용이다.

10가지를 보면 한 · 미 FTA를 놓고 "자유무역 확대에 도움이 안 된다" "통상관료들이 주도한 비민주적 협정이다" "협정문이 길고 복잡하다" "통상분쟁이 생기면 미국이 귀찮아질 것이다" "협정이 헌법을 훼손하고 미국 법에 우선한다"는 얘기들이 들어있다. 또 "한국 투자자에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 투자자가 투자이익을 침해받았을 때 제소하면 미 재무부가 곤란해질 것이다" "미국의 해외투자가 늘어 일자리를 잃는다" "한국으로부터 수입이 늘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혹들, 그리고 끝으로 "자유무역은 미국에 나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과 한국만 바꾸면 우리 내부의 한 · 미 FTA 반대론자들의 얘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저자는 이것들이 모두 허구이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FTA를 놓고 찬반 양론이 있다. 중요한 것은 논쟁과 설득의 방식이다. 미국이 부러운 것은 이럴 때 이성적인 논의가 가능하고, 그런 논의를 바탕으로 경제단체들과 유권자들이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단체들은 지역별 기업,고용 등의 통계를 토대로 한 · 미 FTA를 하면 무역수지,일자리 등 지역경제가 얼마나 개선되는지를 지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 이를 접한 미국 유권자들은 지역 출신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국회에서 한 · EU FTA,한 · 미 FTA 비준문제로 여야가 대립 중이다. 지금의 야당이 기획했던 FTA를 현 여당이 실행에 옮기는 것임에도 저토록 싸우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지만,이것이 정치현실이라면 이를 인정하고 해결방식을 찾아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정치적 표 계산을 똑바로 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부,경제단체,유권자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이 부분이 약한 게 문제다.

정부는 양대 FTA가 가져올 국가 전체의 경제적 이익,지지가 더 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지만 정치인들은 솔직히 말해 여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FTA와 지역(선거구)경제의 이익 간 관계를 보여주는 게 훨씬 먹힌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전략은 없다.

경제단체들도 반성해야 한다. 단체장들이 모여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정도로는 효과가 없다. FTA 이익을 세분화하고 지역별 · 선거구별로 다 조사해 똑바로 알리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지역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면 이를 적극 이해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건 유권자들이다. 조금이라도 FTA로부터 수혜를 보는 '다수'가 침묵하면 정치인들은 절대 이를 표로 계산하지 않는다.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그래서 똘똘 뭉쳐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를 더 두려워할 게 틀림없다. 물론 국가 전체이익이 크다고 해서 손해가 예상되는 소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개방이익의 일부는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이나 근로자의 구제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쓰여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수의 침묵','소수의 성토'때문에 정치적 의사결정이 왜곡되면 그건 국가 전체의 손실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