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명예회장을 통해서 깨닫게 된 점은 경영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실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쉽게 해석하고 단순화해 실행하는 능력은 경영학자들이 연구해볼 가치가 매우 높다고 봅니다. "

울산대에서 지난 2년간 '정주영 경영학' 강의를 전담해온 허영도 교수(57 · 경영학부 · 사진)는 "정 명예회장은 경영학은커녕 대학도 안 다닌 분인데,계획-실행-통제로 이어지는 경영학 3대 프로세스 이론을 너무도 잘 이행하고 실천해온 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에 대해 '1950년대 국내 최초의 벤처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대부분 그룹 창업자들이 각 지역의 재력가 출신이었다면 정 명예회장은 유일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건설 조선 자동차 등 각종 사업에서 '블루오션(신시장)'을 개척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정 명예회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와 트렌드를 읽는 힘을 보여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시대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힘의 원천은 타고난 경영기질이 아니라 철저한 현장중심적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기에다 "정 명예회장은 구상한 사업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원점으로 선회하는 피드백 또한 매우 빨랐기 때문에 사업구상에서 실행, 통제로 이어지는 3대 프로세스가 척척 맞아떨어졌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허 교수는 또 정 명예회장의 협상 전략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협상 전략을 훤히 꿰뚫고 있는 직관력도 뛰어나지만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때는 주저없이 수용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더 우월한 협상력을 발휘하게 된 힘이 됐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정 명예회장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분명히 미국보다 훨씬 앞서 전기자동차를 상용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보면서 모두가 정 명예회장의 삶의 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되짚어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허 교수는 올해부터 강의를 김해룡 신임 경영학부장에게 넘겨주고 정주영 경영학에 대한 집필에 들어갔다. 강의는 격주 화요일 오후 울산대 다매체 강당에서 열린다. 정 명예회장의 경영방식을 생산 · 인사 · 재무 · 마케팅 · 경영전략 등의 분야로 나눠 조명하고 있다. 강의 내용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강의공개 사이트(http;//open.ulsan.ac.kr)에서도 볼 수 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