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쁩니다. 비결이랄 것은 없고요. 그저 열심히 하고 즐기는 거죠."

'철녀(鐵女)' 루이나이웨이 9단(48)은 수줍어하면서도 담담했다. 바둑의 결과보다는 좋은 게임을 하고 난 뒤의 여운을 즐기는 표정이라고 할까. 지난 8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복기를 마친 그의 모습이 그랬다. 그는 이날 열린 제16기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김윤영 3단을 203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제압,종합전적 2-0으로 우승했다.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은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하고 동아제약이 후원하는 전통의 여류 기전이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아줌마 기사의 성적으로는 대단한 결과다. 그는 이번 승리로 여류국수전에서만 통산 여덟 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여류국수전과 인연을 맺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와 2009년부터 올해까지 두 차례나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김 3단에게는 지난해 여류기성위를 빼앗긴 데 대한 설욕전이었다.

"어려운 싸움이었어요. 초반 포석이 좋지 않았거든요. 중반전에 들어서야 흐름을 바꿀 수 있었죠.그래도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

루이 9단의 힘은 상대를 코너로 모는 싸움기술과 깊은 수읽기,빈틈 없는 마무리에서 나온다. 그는 두터운 바둑을 좋아한다면서도 틈만 보이면 시비를 걸며 상대를 흔든다. 일단 우세를 확보하면 끝까지 놓치지 않는 뚝심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모두 끊임없는 공부 덕이다.

"토요일마다 소소회에 나가요. 젊은 프로기사들의 모임인데 공부하기에 좋아요. 평일에는 집에서 바둑을 두고 기원 연구실에도 나갑니다. 소소회 성적은 반타작 정도예요. 만족스럽지요. 소소회가 어떤 곳인데요. 쟁쟁한 남자 신예들이 많잖아요. "

그는 여류 정상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대국에 임해서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둘 뿐"이라며 "하지만 신예들의 기력이 너무 세져 갈수록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3단은 지난해 여류기성전 8강전에서 만났는데 그때 제가 졌어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민진 6단에게 무릎을 꿇었고요. 정관장배에서 내리 7승을 한 문도원 2단도 강하지요. 요새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들 강해졌어요. "

루이 9단은 특히 박지은 9단을 '정상의 실력자'로 치켜세웠다. 박 9단은 지난 10여년간 루이 9단,조혜연 9단과 함께 여류 3강 구도를 구축해온 주인공이다.

"상대 전적에서 박 9단에게 많이 뒤져 있어요. 국내 기전이나 국제 기전에서 많이 안 만난 게 다행이죠.만나면 졌고,언제부터인가 계속 지고 있더라고요. 정관장배에서도 박 9단이 올라오면 제가 안될 것 같아요. 서로 힘으로 부딪치는데 제가 밀리는 거죠.그래도 뭐,열심히 하고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요. "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