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부처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이용당하는 것 같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분리되는 3권분리 정신에도 위배되는 거 아닙니까?" 임시국회가 한창인 9일 오후 정무위원회 질의 도중 회의장을 잠시 나온 한 의원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부산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이슈가 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으로 정무위 안에서 의원들 사이에 공방이 오가던 중 복잡한 머리를 식히러 나온 참이었다.

예보법 개정안은 은행,저축은행 등 권역이 나뉘어져 있는 예금보호기금 안에 공동계정을 만들어 부실 저축은행의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다.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가을 이사철 의원(한나라당)을 통해 이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정부안이긴 하지만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여당 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특히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발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의원발의라는 편법적인 수단을 쓴 것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정부 발의 절차를 거칠 경우 정부안을 만든 뒤 입법예고-차관회의-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반면 의원발의는 국회의원 10명의 서명만 받으면 의원 누구나 발의할 수 있다. 정무위원들은 금융위원회가 의원입법을 활용한 것은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저축은행 부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문제를 방치해뒀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법안 발의를 대신해 줄 의원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정부안의 발의 절차가 긴 것은 그만큼 법안의 완성도를 위해 숙성기간을 두자는 뜻"이라며 "법안이 다듬어지는 동안 정치권과의 협의도 하고 국민들의 여론도 함께 수렴한다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과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 주문을 들어주기 위해 이자제한법 폐지안을 의원발의로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의원발의라는 포장지에 덮인 정부안 중에 당시의 상황에 비견할 수 있는 시급한 법안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