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기 상무장관에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재계 인사가 기용될까. 중국계 이민 3세인 게리 로크 상무장관이 중국 대사로 내정된 가운데 누가 그의 후임으로 발탁될지 관심이다. 재계 인사 영입은 2012년 재선을 준비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실효성이 높은 친(親)기업 카드에다 보수층 껴안기가 될 수 있다.

로이터는 8일 재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로크 장관의 후임으로 최우선 순위는 기업 CEO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CEO 영입이 여의치 않으면 정부 내 인사가 기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중국과의 가교 역할을 최일선에서 맡을 주중 대사로 로크 장관을 이동시킬 경우 백악관은 재계 인사를 앉힐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고 전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광범위하게 후임자를 물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백악관 내에서는 재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상무장관이 재계 인사로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의료보험개혁법과 금융감독개혁법을 도입하자 재계는 등을 돌렸다. 재계는 의회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을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충격을 받은 오바마는 중간선거 참패 다음날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친기업으로 방향을 선회할 뜻을 내비쳤다. 곧이어 보란 듯이 새 백악관 비서실장에 윌리엄 데일리 JP모건 중서부지역담당 회장을 과감히 기용했다. 취임 초기 금융위기 진원지인 월가의 금융인들을 향해 "살찐 고양이"이라고 맹비난했던 오바마가 더 이상 아니었다.

데일리를 영입한 게 월가 등을 향한 상징적 행보였다면 상무장관 자리에 CEO를 기용하는 조치는 재계와의 밀착도 높이기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까지 수출을 두 배로 늘려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재선을 노리는 그가 수출전략 수립과 이행,이를 위한 기업 지원을 주업무로 하는 상무장관 자리에 재계 인사를 앉히려는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적합한 재계 인사를 발굴하지 못할 경우 대안으로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상무장관에 지명할 가능성이 있다. 댈러스 시장 출신인 커크는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적극 지원했으며 지난해 말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타결을 이끌어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도 미키 캔터 USTR 대표가 상무장관에 기용된 선례가 있다.

커크가 로크 후임으로 가면 USTR 대표에는 마이클 프로먼 백악관 국제경제담당 부보좌관이 지명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다만 커크와 프로먼의 연쇄 이동은 한 · 미 FTA 비준과 미 · 콜롬비아,미 · 파나마 FTA 진전 작업에 다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백악관으로서는 고민도 되는 카드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출범 때부터 상무장관 인선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당초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명했지만 기업 유착 의혹으로 그는 자진 사퇴했다. 그 다음엔 초당적 정치 의지를 발휘해 공화당의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을 지명했다. 하지만 오바마와 정치적 견해차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레그 역시 사퇴했다. 세 번째로 지명된 로크는 오바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