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과 가르치는 일은 비례하지 않는다. 뛰어난 선수가 꼭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탁월한 지도자 중엔 현역 시절 다소 부족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자기 같지 않은 후배를 다그칠 때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아 훈련시키고 격려하는 까닭이다.

역경을 계기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잘 나갈땐 모르던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자신과 조직을 승리로 이끄는 이들도 있다. 'NH농협 2010~2011 V리그' 정규 리그에서 우승,만년 3위의 설움을 털어낸 대한항공 배구팀 '점보스'의 신영철 감독만 해도 그렇다.

점보스는 세터 한선수 등을 비롯한 괜찮은 진용에도 불구,라이벌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 밀려 그동안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시즌 초엔 잘나가다가도 후반에 무너지면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신 감독은 이런 팀을 맡아 시즌 경기가 모두 끝나기 전 우승 확정이란 영예를 안았다.

만년 3등 점보스의 우승은 최신식 전용 체육관과 숙소 신설 등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스템 배구'를 구사한 결과로 여겨진다. 스타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전원이 역할 분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아성을 깨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시스템 배구를 만들어낸 게 신영철 감독이다. 신 감독은 '컴퓨터 세터'로 불리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1984년 경기대 1학년 때부터 1996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국가대표팀 세터를 지내면서 이름을 날렸다. 삼성화재 코치를 거쳐 2004년 LIG손해보험 사령탑이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팀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2007년 3월 전격 경질됐다. 그런 영향일까. 코치로 복귀한 점보스에서 감독이 된 뒤 그는 팀 운영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감독은 선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존재,달빛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후보 선수에겐 '하면 된다'는 용기를,주전에겐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감과 긴장감을 함께 불어넣었다. 그런 다음 서브와 리시브 등 기본기 훈련에 집중,점보스 특유의 '벌떼 배구'를 완성했다. '인생의 비밀 중 하나는 걸림돌로부터 디딤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던가. 신 감독이 이끄는 점보스가 4월 챔피언전 우승까지 거두게 될 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