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잠들면 물에 빠져죽는 네덜란드 감옥
북유럽의 소국 네덜란드는 17세기 한때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 지위를 누렸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거치며 '세계의 공장'이 되기 전 단계에 이 나라는 상업 부문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세계의 창고' 역할을 했다.

이 나라의 선단은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헤집고 다녔다. 청어 잡이나 토탄 채취 같은 일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던 가난한 국가에서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겨우 수십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경제가 팽창하고 부가 넘쳐나는 황금기에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의 증대는 언제나 부의 집중을 통해 일어나는 법이며,결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성장 역시 너무나 큰 빈부격차를 동반했다.

부가 확대되는 곳으로는 주변의 가난한 지역으로부터 빈민들이 몰려오게 마련이다. 고향에서 굶고 있느니 차라리 부자 동네로 가서 한번 기회를 노려봄 직하지 않겠는가. 돈이 넘쳐나는 곳에 가면 최소한 먹고사는 것은 해결할 수 있을 테고,운이 따라주면 큰 부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실제 소수의 사람들은 눈부신 사회적 상승을 이뤘다. 빠른 경제 성장기는 빈농 출신이 재벌 총수가 되는 신화적인 일들이 가능한 때다. 야콥 포펜이라는 대상인은 막대한 재산을 모았고 생전에 암스테르담 시장까지 역임했는데,그의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어를 통에 담는 일을 하던 미천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바닝 콕이라는 대상인의 아버지는 유랑걸식하던 걸인 출신이었다.

이처럼 단 두 세대 만에 사회 최하층에서 최상층으로 수직 상승하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지극히 예외적이었고,대다수 사람들은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당시 유럽 최대의 직물 제조 지역이었던 라이덴 시의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재상 콜베르가 프랑스인이 1주일 일하는 것보다 네덜란드인이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동 노동도 심각한 문제였다.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을 시켰는데,때로 이웃 도시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집단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고용주 중에는 아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다 못해 일하는 시간 외에는 길거리에 나가 동냥을 하도록 시키는 자도 있었다. 아동 노동 착취가 너무 심해지자 1646년에 라이덴 시 당국이 개입해 어린이들은 하루 14시간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자비로운' 조치를 취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는 주로 검은 호밀 빵과 치즈 위주였다. 가끔 소 내장과 약간의 고기를 넣은 스튜를 먹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맹물에 가까웠다.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에 절인 청어였다. 많은 사람들이 허기에 시달리던 시절,암스테르담 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욕망과 슬픔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으니 빵가게 진열대에 내놓는 과자에 너무 사치스럽게 장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내놓기도 했다.

황금기의 네덜란드는 빠른 경제 성장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소수는 큰 부자가 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사회였다. 이런 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병리 현상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부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우선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이 대유행했다. 이 시기에 암스테르담의 로또 복권 판매소에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우격다짐을 벌이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경향이 강해졌고,온갖 종류의 노름이 유행했다. 모두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조바심이 빚어낸 현상들이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고자 하니 온갖 투기 현상이 벌어졌다.

유명한 튤립 광기가 대표적 현상이다. 이것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기 현상이며,자본주의적 심성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사건으로 거론된다. 당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던 튤립의 값이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튤립 재배에 달려들었다. 너도나도 튤립 구근을 사려 하자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곧 투기 광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수중에 가진 구근만이 아니라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것까지 선매매했고,그바람에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급기야 화려한 불꽃무늬의 꽃을 피우는 구근 하나의 값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투기현상이 그렇듯 조만간 거품이 꺼지고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자 막차를 탔던 수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가운데 이 현상도 막을 내렸다.

[경제사 뒤집어 읽기] 잠들면 물에 빠져죽는 네덜란드 감옥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의 긴장을 높인다. 어차피 자본주의 질서의 핵심은 불평등이고,그로 인한 위험을 막는 것이 국가기구의 임무다. 봉기를 막기 위해 국가는 엄격한 조치들을 취했다. 빈민들에 대한 정부의 억압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물이 차오르는 감옥을 들 수 있다. 끊임없이 물이 차오르는 지하 감옥에 가두고는 간단한 펌프 하나를 줬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익사하지 않으려면 계속 펌프질을 해야 했다. 밤중에도 잠시 눈을 붙였다가는 다시 일어나 펌프를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가 빈민은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므로 노동의 소중함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드디어 어느 날 이곳에 갇힌 죄수가 펌프질을 계속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감옥은 폐쇄됐다. 찬란한 황금기 자본주의 성장의 이면에는 수많은 빈민들의 불행과 국가의 잔혹한 억압이 숨겨져 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