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구제는 정녕 나랏님도 못하는 일인가. 빈곤과 황폐한 삶을 해결하는 것은 인류의 능력 밖인가. 헐벗고 굶주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꿈도 야망도 없는 데다 게으르고 무식해서 그런 건가. 마케팅의 구루로 불리는 저자 필립 코틀러(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빈곤은 주로 전쟁 · 자연재해 · 인종주의 · 차별 · 무지 · 일부의 탐욕 탓이고,문제 해결 또한 어렵지만 공공부문과 민간부문,곧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가 힘을 모으고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은 좋지 않다. 인구의 40%가 넘는 30억명이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빈곤은 백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염병이 아니다. 빈곤은 소아마비보다 당뇨병에 가깝고,외부 환경에 좌우되며 개인별로 처치도 달라야 하는 만성적 질병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둘 순 없다. 가난은 더 이상 가난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되고 실시된 빈곤 퇴치법은 경제 성장,소득 재분배,해외 원조,인구 증가 통제 등 네 가지.

그러나 어느 것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제 성장은 극단적인 빈곤층을 감소시키지 못하고 소득 재분배는 세금 증가에 따른 기업가 정신 및 투자 위축을 불러온다. 대규모 해외 원조 역시 실효성은 약하고 지속적이기 어렵다. 게다가 자립 의지를 줄여 빈곤을 대물림시킨다. 식량 배급 역시 농민에게 타격을 주거나 정작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지난 50년간 분배된 23조달러의 해외 원조가 자이르나 수단 파키스탄의 독재자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마당이다.

그러니 이젠 가난한 이들의 재활의지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마케팅(Social Marketing)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사회적 마케팅'이란 빈곤 문제 해결 및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교환이론 · 시장 세분화 · 경쟁 같은 마케팅의 원리와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2006년 록스타 보노가 시작한 '레드(RED)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레드 프로젝트는 상품에 빨간 딱지를 붙여주고 대신 세계기금 모금에 동참하도록 하는 일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애플,델,모토로라,갭의 매출은 늘어나고 직원 만족도도 올라갔다. 사회적 마케팅이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 충성도를 높인 결과다. 저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효율적 운영에 필요한 공공 · 비영리 · 민간부문의 성공적 파트너십 원칙을 제시한다.

'공통의 목표에 동의하라,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라,서로 존중하고 감사하라,협상하고 타협하라,소통하라,책임 체계를 구축하라,결과를 측정하고 보고하라'는 게 그것이다. 빈곤 퇴치를 위한 지침이지만 들여다보면 국가와 기업 등 모든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과 다르지 않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