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기업'에 다니면 어떨까. 종업원은 물론 고객,투자자,파트너,사회까지 '사랑'해주는 기업이니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남을 배려하고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건강한 기업문화가 자리잡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사랑받는 기업' 연구가들은 오히려 이런 기업의 독특한 문화가 이들 기업을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여유가 생겨서 이해당사자 모두를 배려하게 된 것이 아니라,이해당사자들을 배려하는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하나의 기업문화를 형성하게 됐고,이로 인해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TACTILE 기업문화 모델

'사랑받는 기업'으로 뽑힌 28개 회사에 "귀사가 선정된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답변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직원들이 꼽은 것이 기업문화였다.

"돈을 좇는 것보다 기업의 문화를 보전하는 것이 휠씬 더 중요하다. "(IDEO)

"성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다. "(사우스웨스트 항공)

'사랑받는 기업' 연구를 주관하는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 교수는 "한 기업의 문화는 조직의 정신적인 인프라"라고 강조하면서 그 인프라 안에 "공공의 목적을 위해 조직 구성원들을 한데 모으는 가치,가정,관점의 세트가 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 기업 문화가 그 회사의 세계관이 돼 기업 구성원 전체의 행동방향을 정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들 기업의 이런 문화적 특징을 영어의 머리글자를 따 'TACTILE'이라고 이름지었다. '손에 잡히는' '감촉이 있는'이라는 뜻의 'tactile'이란 형용사를 활용해 이들 기업의 문화가 회사 밖의 이해당사자들이 볼 때도 확실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고 강조했다.

TACTILE은 차례로 transparency(투명성) authenticity(진실성) caring(보살핌) trust(신뢰) integrity(성실) learning(배움) empowerment(권한위임) 등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비즈니스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쟁적인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투명성:'사랑받는 기업'들은 보통 회사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한다. 이들 회사의 경영진은 재무 및 제품 정보를 공유하면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신뢰가 더 강해진다고 믿고 있다. 컨테이너스토어의 경우는 모든 직원들이 재무관련 지표를 전부 볼 수 있다.

△진실성:진실성은 마음에서 우러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존슨앤드존슨은 "우리 회사의 신조인 가치와 존중은 시장에서 우리가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바탕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한다. 진실성이 바탕이 되면 상호존중의 문화가 형성된다.

△보살핌:직원들을 가족구성원으로 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받는 기업'들은 직원들을 직접 보살피는 태도를 갖고 있다. 팀버랜드의 최고경영자(CEO)인 제프리 스워츠는 "경영진들이 직원에게 일 이외에 중요한 일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출 · 퇴근 시간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야근이나 조기 출근 등 '이상한' 근무가 발견되면 원인이 무엇인지 묻고 반드시 고쳐주려고 노력한다.

△신뢰:높은 성과를 올리는 조직은 높은 신뢰를 받는 조직이다. BMW에서는 직원들이 정기 조사에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주저없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기 일이 없어지면 해고될지 몰라 두려워 하는 조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BMW에선 새로운 일을 부여받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성실성:'사랑받는 기업'들은 대부분 사명선언서나 공식적인 문서에 가장 높은 수준의 성실성(integrity)을 강조하고 있다. 캐터필러는 "성실성은 우리가 믿는 가치,윤리적 기준,정직한 행동 등 우리를 기업으로 규정하고 유지시켜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기업에서 협력업체에 원가를 전가시키는 관행은 찾기 어렵다.

△배움:'사랑받는 기업'은 배우는 조직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숙련된 직원들은 물론 새로 온 직원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 할리데이비슨에는 학습센터가 있어 전 직원의 평생교육을 책임진다. 컨테이너스토어의 신입사원은 첫해 253시간의 교육을 받고 이후에도 매년 16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미국 소매점 평균은 첫해 7시간이고 이후에는 교육이 거의 없다.

△권한위임:현장의 종업원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은 사랑받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화다. 의류회사의 한 종업원은 판매한 지 10년이 넘은 모피코트를 바꿔달라고 온 할머니 고객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회사 입장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읽고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다.

#문화가 곧 DNA로

시소디어 교수는 이런 일곱 가지 특징을 열거한 뒤,이를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사랑이 중심이 된다'고 강조했다. 직원이든 고객이든 다른 이해당사자든 모든 사람들을 숫자나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다루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의 욕구단계설을 만든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자아실현을 한 사람들에 대해 "성숙,건강,자기 달성의 높은 단계까지 도달한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 많은 이들이고 때로는 인간의 다른 종(種)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랑받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기업 성장사에서 생존이나 성공 이상의 목적을 세우고,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 자체를 바꿔간다. 보통의 회사들에 이들 기업은 어쩌면 전혀 다른 DNA를 가진 별종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시소디어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이 보여주는 이런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문화와 비전,사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모든 이해당사자들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가는 조직문화 자체를 존중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자극하는 것은 경영진이 아니라 조직문화 그 자체"라고 말한다.

기업의 역사는 200년 남짓이지만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기폭제 노릇을 했다. 개인들이 모여서 결코 이룰 수 없는 큰 목표를 추진해왔고,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성장의 19,20세기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만 인식되면서 인간이 누리던 고귀한 노동의 즐거움이 어느새 사라졌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이름으로도 쓰이는 이 단어는 어떤가. 'TGIF(Thank God,it's Friday · 야,금요일이다!)'.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이 바로 기업인데,과연 우리 회사원들이 언제까지 이런 단어를 자조적으로 써야 할까. 직업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가 오로지 탈출만을 기다리는 감옥과 같은 곳이어야 할까. 회사가 곧 나의 존재의미와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는 곳이 될 때, 직원들은 오히려 회사에 가는 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Thanks God,it's Monday(야,월요일이다!)'라고 할 수 있을 때 현대의 자본주의에는 인간미라는 아름다운 색이 입혀질 것이다.

'사랑받는 기업'은 이런 종업원들이 넘쳐나기를,그리고 그런 종업원들이 만들어가는 멋진 회사를 우리 시대 사람들이 갖기를 소망하는 염원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

▷연세대 철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저서=경영자를 위한 변명,심플의 시대 등
▷역서=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경영의 미래,피터드러커의 리더스 윈도우,경영이란 무엇인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