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 국채의 대세상승장이 끝났다고 주장해온 '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 · 사진)가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가 보유 중인 국채 등 미국 정부 관련 채권을 모두 처분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핌코의 공시 내용을 인용,그로스가 토털리턴펀드를 통해 보유 중이던 미 국채를 모두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핌코의 토털리턴펀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채권형 펀드이다. 1월 말 이 펀드의 정부 관련 채권 비중은 전체 펀드 평가액(2369억3000만달러)의 12%였으나 2월 말에는 제로(0)로 줄었다. 이에 따라 토털리턴펀드의 현금보유액은 545억달러로 1월 말에 비해 439억달러 증가했다.

핌코가 국채를 내다 판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국채 매입으로 미 국채 가격이 고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FRB의 시장개입이 없었으면 금리가 1.5%포인트가량 높게 형성됐을 것이라고 그로스는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국채 매도를 부추긴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는 미 국채를 처분한 자금 중 일부로 회사채와 이머징 국가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핌코는 앞으로도 기업이 발행한 우선주 등을 추가 매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로스가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다 팔았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미 국채 가격은 상승했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08%포인트 하락한 연 3.47%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 입찰에 돈이 몰린 데다 리비아 사태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빚어진 데 따른 결과이다. 그로스가 작년 말부터 줄곧 국채 매도 신호를 보낸 만큼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아더 CRT캐피털 채권투자전략 책임자는 "투자자들이 그로스가 더 이상 팔 국채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핌코와 경쟁하는 미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최근 들어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적극 미 국채를 매입했다. 국채 금리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FRB의 국채 매입이 일단락되고 미 국채 가격이 일정 수준 떨어지면 핌코가 다시 국채를 사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