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하게 나돌았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이름이 나왔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는 막판까지 거론됐다. 이후엔 산은지주 회장으로 가는 것으로 정리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같은 소문은 결국 사실로 판명이 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산은지주 회장에 내정됨에 따라 민영화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예전에 강 특보가 주장했던 '메가뱅크론'이 부활할지도 관심사다. 강 특보는 10일 기자와 만나 메가뱅크론에 대해 "정책당국이 결정하는 것이지 산은지주 회장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말을 아꼈지만 금융권에선 다시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무성한 소문끝에 산은지주행(行)

올초부터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강 특보의 민간행이었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하나금융 등 금융지주 회장 후보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강 특보는 단골로 거론됐다. 특히 우리금융은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강 특보가 회장으로 갈 것이란 설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해당 금융사 임직원들도 강 특보의 이동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대통령의 경제교사로서 최측근 실세인 만큼 당연했다.

일각에선 금융지주 쪽에서 강 특보를 놓고 '모시기 경쟁'을 벌인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세가 회장으로 오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뿐 아니라 금융권의 구조개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지어 강 특보 가족의 건강문제까지 거론하며 돈이 궁해 민간행을 원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까지 나돌았다.

이런 소문이 나올 때마다 강 특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틀 전 기자와의 사석에서도 본인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그 얘기는 빼고 얘기하자"며 애써 피했다. 다만 "대통령 측근이 민간 금융회사로 가는 사례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을 덧붙여 본인의 민간행을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지인들에 따르면 올초부터 "30년 이상 공직에서 봉사한 만큼 이제는 민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몇차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특보는 결국 산은지주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행시 15년 후배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인 결과다. 강 특보를 잘아는 한 금융계 인사는 "공직에서의 경험과 평소 금융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을 시장에서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 소유 국책은행인 만큼 낙하산이라는 시선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가뱅크 부활하나

강 특보는 대표적인 메가뱅크론자다. 2008년 초 현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 '메가뱅크론'을 들고나와 금융권의 주목을 끌었다. 정부 소유 은행인 우리금융과 산업은행,기업은행을 합쳐 자산 500조원 이상의 초대형 은행을 탄생시키자는 주장이었다. 강 특보는 "일단 은행이 규모가 돼야 세계 유수 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당시 금융위원회와 입장차이로 '산은 민영화를 우선 추진하고 대형화는 시장 상황에 맡긴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그 뒤로 메가뱅크론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메가뱅크론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과정에서다. UAE 정부는 공사이행을 위한 은행 보증서를 요구했다. '신용등급 AA 이상이며,세계 50대 은행일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국내에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은행이 없다.

김석동 위원장도 지난 2월 초 "세계적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며 "공공부문 정책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메가뱅크론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메가뱅크론자인 강 특보가 산은지주회사 회장으로 내정됨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정책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메가뱅크론이 처음 제기됐을 때처럼 우리금융까지 포함된 구도가 짜여질 가능성도 있다.

◆산은 민영화 속도 붙나

강 특보 내정으로 지지부진한 산업은행의 민영화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산업은행법에 따르면 기업공개(IPO) 등 민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마친 뒤 2014년 5월까지는 산은의 최초 지분 매각이 이뤄져야 한다.

강 특보는 "아직 공식 임명받기 전이어서 뭐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시간을 갖고 산은 민영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 특보 사무실에는 민유성 현 산은지주 회장이 방문해 산은의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재형/장진모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