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피해자가 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1988년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이후 23년간 표류했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의료분쟁조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11일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그동안 사건 당사자끼리 합의하지 못하면 평균 26.3개월 걸리는 소송을 통해 의료분쟁을 해결해온 관행이 개선돼 환자의 심적 부담과 비용 및 시간 낭비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의료사고 피해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조정과 중재를 관장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중재원은 의료인의 조정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의사가 수용할 경우 의사에게 사고의 원인이 된 의료행위 당시 환자의 상태와 그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등을 서면 또는 구두로 소명받고,해당 의료기관에 들어가 관련 문서를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다.

법안은 조정이 성립되거나 조정절차 중 합의가 이뤄지면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 한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의료진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소극적' 형사처벌 특례조항을 담았다. 그러나 피해자가 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부칙으로 이 조항을 공포 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의사가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제도는 분만 시 발생하는 의료사고로 한정했고,피해자의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을 위해 손해배상금 '대불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논란이 됐던 의료사고 입증 책임 전환(의사가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함) 조항은 법안에서 제외됐다. 의약품 처방 및 조제 등의 행위로 발생한 피해도 의료사고 범위에 포함시켰으며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해서도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르면 내년 3월께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