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면서 사우디에서도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질 태세다. 내전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는 리비아를 넘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도 민주화 바람을 비껴가기는 어렵게 된 모양새다. 리비아에선 카다피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카다피 정부와의 외교 단절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사우디 '분노의 날'

AFP통신은 10일(현지시간)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인 알 카티프 지역에서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실탄을 발사해 3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것은 처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성을 포함한 800여명의 시아파가 시위를 벌였고 부상자를 제외하고도 시위대 일부가 경찰에 연행됐다"고 전했다.

이번 충돌은 11일로 계획된 이른바 '분노의 날' 시위 목전에 빚어졌다. 이슬람권 휴일인 금요일이자 금요기도회가 열리는 날에 계획된 분노의 날 시위가 자칫 대규모 소요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글에 3만2000여명이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시위대 측은 인터넷을 통해 국회의원 직접선거제 도입과 여성 인권 신장,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는 캠페인도 벌여왔다.

반면 사우디 정부는 강도 높은 진압으로 시위 확산을 차단할 계획이다. 사우디 경찰당국은 행진과 집회 등 어떤 형태의 시위도 허용치 않겠다며 시위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AP통신은 "수도 리야드의 도심과 주요 도로에 이미 곤봉과 최루가스로 무장한 전경과 특수부대원들이 배치됐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사우디 정부는 인터넷 시위까지 차단하기 위해 친정부 성향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신설해 약 2만3000명의 지지세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사우디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면 국제원유값이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고 마켓워치가 전했다. FT는 "전 세계에서 매일 생산되는 원유 중 절반가량인 834만배럴이 사우디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우디 소요사태는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카다피군 승기 잡았나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카다피군과 시민군 간 승부는 일단 카다피군이 승기를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카다피군은 시민군이 장악하고 있던 석유수출항인 라스라누프를 10일 탈환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40㎞ 떨어진 자위야도 거의 카다피군의 수중에 들어오면서 시민군은 본거지인 벵가지까지 위협받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잘 무장된 카다피군이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승리할 것"이라며 "리비아가 친카다피 세력이 차지하고 있는 트리폴리와 시민군 근거지인 벵가지 그리고 주변 지역 등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카다피 세력의 공세가 강해지자 국제사회는 잇따라 카다피와 관계를 끊고 있다. 미국은 워싱턴 주재 리비아 대사관과 외교관계 중단을 선언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오는 15일부터 이집트와 튀니지를 방문,시민군 대표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프랑스도 시민군 지도부인 임시과도국가위원회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이자 대화 상대로 인정키로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카다피 측은 꿈쩍도 않고 있다. 오히려 이날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은 BBC,스카이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민군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에게 협상을 위해 2주의 시간을 줬고 이제는 행동에 돌입할 때"라며 "며칠 안에 무장한 폭력배들은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