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생활 55년째를 맞은 국민배우 안성기 씨(59).그와 마주앉자마자 술 얘기부터 나눴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로열 살루트 마크 오브 리스펙트'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고 상금은 사회공헌활동에 기부하는 상이다.

그는 9일 저녁 시상식에서 스코틀랜드의 전통 위스키 잔인 퀘익(Quaich) 모양의 트로피와 함께 상금 5000만원을 받아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유니세프는 그가 20년째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세계아동구호 유엔기구.이번 상금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건설에 쓰일 예정이다.

"영화상을 받는 것과는 또 다르죠.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로열 살루트 쪽에서 저를 통해 기부한다는 게 참 좋고,어려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더욱 좋습니다. 원래는 술을 잘 못마셨어요. 영화 '실미도' 찍을 때 대장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자주 회식을 했는데 실제 군대처럼 '자~ 마시자'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생겼어요. 실미도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까 어디 왔다갔다 할 일도 없고….그 때 술이 늘기 시작해서 요즘엔 제법 즐기는 편이 됐습니다. 음식 나오면 술이 왜 안 보이나 하고.아,술을 좋아하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생각하죠."

그는 "로열 살루트에서 얼마 전 선물을 보내줘 현빈 등 후배 13명과 함께 박중훈 집에서 한 잔씩 했다"며 "많이는 마시지 못하고 적당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가 주량의 최대치"라고 말했다. "취하는 건 싫죠.계속 주거니 받거니하다 보면 그걸 조절하는 게 어렵지만요. 가끔 폭탄주 마시는 자리가 있으면 괴롭고,아무래도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자리가 좋아요. "

영화계에서 '한결같은 사람''진짜 진국'으로 평가받는 그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한결같은 것"이라며 "세상이 어떻게 되건 느낌이 똑 같은 그런 사람이 좋다"고 했다. 늘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그러나 자식들한테는 제법 엄한 아버지다. "늦게 낳아서 그런지 잘 다루지도 못하면서 엄하기만 한 게 아닌가 돌아보기도 해요. 기술적인 면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한테 하는 이야기는 다른 거 없습니다. '착하게 살자' 이게 다죠."

착한 마음은 그의 부모에게 물려받은 '핏줄'이기도 한다. "아버지(안화영)는 영화인이었지만 원래는 체육인이었다고 해야겠네요. 운동을 워낙 많이 하셨죠.아이스하키,육상,10종 경기….손기정 선수와도 친하게 지내셨어요. 서울대 문리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체육선생님도 하셨는데 친구들인 김기영 감독님,연기자 박암 선생님,이런 분들이 아버지를 영화 쪽으로 끌어서 두 편인가 연기도 하시고 제작 · 기획 일을 쭉 하셨어요. 제가 다섯살 때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아버지가 누구보다 좋아하셨겠다 싶어요.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운 심성이나 남의 대한 배려는 어머니를 정말 많이 닮았나봐요. 심리적인 유산이 크고 감사하죠."

이런 것들이 대물림돼 아이들도 예술을 전공하고 있다. "큰아들(다빈 · 23)은 미술공부를 하고 있는데 대학 2학년 마치고 공군에 들어갔어요. 막내(필립 · 20)는 올 가을부터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하게 됐고….애들 엄마도 조각을 했으니까 뭐 다른 데로 갈 수가 있나요. "

공식 프로필에는 대구 태생으로 기록돼 있지만 그의 고향은 서울이다. "전쟁 통에 대구로 가 고향이라고 하기는 힘들죠.부모님은 강릉 분들입니다. 전쟁 중에 피란가다가 대구에서 저를 낳고 며칠 뒤에 마산으로 내려갔다고 해요. 1년 만에 서울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매사에 '범생이'인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삐딱한 얘기요? 하하.많죠.여덟살 때부터 당구장에 출입했어요. 충무로 일신빌딩 거리의 스타다방 있던 곳이었는데 어른들이 가면 따라가서 치기도 했죠.촬영장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아서 어른들 용어를 많이 배웠는데,엉덩이를 '빽판'이라고 하고….밤샘 촬영 땐 졸리니까 화투장으로 노름판에 끼기도 했죠.고스톱,육백,섯다 등등 굉장히 잘했어요. 그땐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니까 어른들 흉내내면 주위 분들이 재미있다 하고,그래서 괜찮은 건가보다 했죠.가끔은 어른들한테 '저놈이 발랑 까져서 뭐가 될까' 그런 얘기도 듣고…."

촬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친구들이 그리웠을 법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수업을 제일 많이 빼먹었는데 선생님께서 별도 시간을 잡아서 가르쳐주신곤 했어요. 선생님 댁에서 잠든 적도 있고.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수업 빠지면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전 반대로 그게 싫었어요. 애들이랑 더 있고 싶은데 오후가 되면 제작부장이 데리러 왔죠.그 당시 스리쿼터(지프와 트럭의 중간급)가 영화계에 몇 대 있었어요. 차 한 대로 모든 배우들을 이곳저곳 데리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이었죠."

그의 데뷔작은 '황혼열차'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그 영화에 아버지가 출연하셨어요. 어느날 김기영 감독님이 '고아 역할 맡을 애가 없으니 자네 아들 데려다 하세'하는 바람에 시작했습니다. 그게 배우로 가는 길이었죠.요즘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배우나 연예인 시킬 생각이 있지만 그때는 전혀 아니었죠.고생도 많고….일부러 시킨 게 아니라 할 수 없이 데리고 갔는데 제법 하니까 소문이 나서 계속하게 됐어요. 운명인가,하하.출연료는 기억이 안 나요. 어렸을 때 초콜릿 많이 얻어 먹어서 이가 다 썩었으니까,그런 게 아마 출연료였을까요. 제작부장들이 남대문시장 가서 미군PX에서 파는 걸 사왔죠.그거 먹고 그냥 자곤 해서 이가 많이 상했죠."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대종상(당시 문교부장관상)을 받고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특별상까지 받은 그는 배우지망생들에게 '20년 법칙'을 강조했다.

"이게 맞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자기가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되든 안되든 20년은 버텨야 합니다. 그 정도 긴 호흡을 가지고 덤벼야 뭐가 보이죠.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서 버티면 분명 자기 분야에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저 분야 왔다갔다 하면 '꽝'이고….연극이나 다른 분야를 보더라도 보통 20년 정도는 이겨낸 분들이 성공하잖아요. "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1주일에 3~4회 두시간반씩 운동을 한다.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골프.핸디캡 6,7 정도의 아마 고수다. 드라이브샷 거리도 220~230야드나 된다.

"골프 연습장이 양재천 타워팰리스 근처에 있는데 거기서 연습하고 밑에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웨이트레이닝을 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운동량이 굉장히 많은 편이죠.수십 년 한 운동이라 안 하면 못 견뎌요. 몸무게가 몇백그램만 늘어도 금방 느낍니다. "

남들이 평생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홀인원을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1990년대 초 수원에서,한 번은 작년에 비전힐스에서 했죠.처음엔 원 바운드로 했는데 작년엔 수직으로 들어갔죠.하고 나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어요. 홀인원턱을 세게 내야 하니까. 그런데 라운딩한 분들이 부담 주지 말자고 해서 그날은 저에게 손도 못 대게 하고,대신 제가 그 분들께 라운딩 한 번 모시기로 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해 박세리 선수와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프로모션 행사로 이틀 연속 라운딩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정작 영화 얘기는 빠트릴 뻔했다. "지금 준비하는 작품은 '페이스 메이커'입니다. 마라톤 감독 역할을 맡았죠.올 겨울께 관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

만난사람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