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외식업체 대표 A씨는 부인 B씨에게 식자재 생산공장을,아들 C씨에게 택배회사를,누나 D씨에게 식당용품 생산공장을 차리게 했다. A씨는 회사가 부인,아들,누나의 회사와 거래를 하도록 했다. A씨는 또 자신의 회사가 곧 중국에 지점을 낸다는 사실이 결정되자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중국 소재 회사를 입찰에 참가하게 했다.

내년 5월부터 기업주인 A씨의 행동은 규제대상이 된다. 자기거래(회사 대표 · 이사 등이 자신 또는 제3자를 위해 회사와 거래) 및 회사기회 유용금지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상법개정안은 기업활동을 너무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반(反)대기업법이라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자기거래 제한 확대된다

상법 개정안은 회사 오너나 이사 등 경영진 본인뿐 아니라 부인,친인척,사돈 등이 해당 회사와 거래(자기거래)하려면 이사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오너 등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50%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의 거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현행법에는 본인의 자기거래시에만 이사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됐다. 이사회에서 동의자 숫자 및 제한범위가 종전보다 늘어났다. A씨의 경우 부인,아들,누나의 회사와 자신의 업체간 거래를 하려면 회사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해지는 것.

개정안에는 '회사기회 유용금지'도 도입된다. 이는 회사가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사업기회를 오너 등이 자신이나 제3자에게 넘기려면 역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제한되는 회사의 사업기회는 △직무 수행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회사 정보를 이용한 기회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회 등으로 구체화됐다. 또한 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배임) 회사 임원 및 이를 승인한 이사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지웠으며,손해액은 회사기회 유용으로 본인 또는 제3자가 얻은 이익이라고 규정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회사 오너 등의 배임행위 책임을 물어 주주들이 제기하는 집단소송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손해액을 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배임의 범위 확정이 예전보다 쉬워질 것"이라며 "대기업 오너가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자회사와 대기업의 거래를 할때에도 제한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업무감독을 맡는 집행임원 제도 및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변호사 등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했다.

◆의결권 없는 보통주 발행된다

개정안은 또 의결권이 없는 보통주 발행을 허용했다. 이와 함께 액면가보다 낮은 주가로도 기업이 주식발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의결권 제한 없이 우선주를 발행했다가 투기세력 등에게 경영권을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면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보통주를 일반 보통주보다 저가로 발행하면 소형 자금을 빨리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한책임회사(LLC)와 합자조합(LP) 등 새로운 기업 형태가 허용된다. 유한책임회사는 출자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사원이 출자금액만큼 책임을 지는 형태의 회사 구조다. 법무부 측은 "유한책임회사는 청년 벤처 창업에 적합한 기업유형"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업 구조조정시 회사 채권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을 허용하고,회사합병(M&A)시 주식 이외에 현금이나 사채를 교부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주식과 전자사채도 도입된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부동산 예고등기제도(등기를 무효 혹은 취소해달라는 소송이 제기됐을때 법원이 직권으로 소송 제기 상황을 등기하도록 하는 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부동산등기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