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국내 기업들도 초긴장 상태다. 일본의 첨단 부품 ·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교역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완제품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부품 대란 사태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본산 부품 · 소재 수급에 차질

1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에서 수입하는 주요 품목은 철강 제품,반도체,플라스틱 제품,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반도체 제조용 장비,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유리제품,기초유분,광학기기,정밀화학원료,자동차부품 등이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과 제조 장비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정혁 KOTRA 일본사업처장은 "일본에서만 수입이 가능한 '온리 재팬(only japan)' 상품이 많다는 게 문제"라며 "이들 제품의 대외 수출이 중단될 경우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항공기 및 자동차 동체 등 첨단 제품에 쓰이는 탄소섬유만 해도 일본이 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또 아사히글라스는 플라즈마 유리기판 시장의 70%,후지필름은 액정편광판보호필름 분야에서 80%,스미토모금속은 액정용복층도금기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기업들 향후 여파에 촉각

지진의 진앙지인 일본 동북부 지역에는 반도체 스마트폰 부품 등 전자업종과 기계,석유화학 공장들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지역에 위치해 있지는 않지만,후지쓰 도시바 등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수입하는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반도체는 기계용 컨트롤러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대부분"이라며 "국내 업계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공작기계 생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만 해도 기계 제어용 핵심 반도체를 일본과 독일에서 수입하고 있다.

기계산업은 적잖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호쿠 지역에 산에이기계 등 산업기계 설계 제작업체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산에이가 생산하는 유압모터,대형 공작기계,에어밸런스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를 일본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다"며 "부품을 가져와 국내에서 조립하는 식인데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강판 규모가 크다는 점도 뇌관이다. 철강판은 대일 수입품목 1위로 국내 철강업계는 열연강판,후판 등의 강재를 연간 1100만t 수입하고 있다. 연간 국내 철강재 소비량이 약 5000만t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철강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전망이다. 일본 제2의 철강사인 JFE스틸의 지바현 제철소에서 화재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일본 제철소 피해가 가시화될 경우 아시아 철강재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일본의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기업들은 현지에 파견한 직원들의 안위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상당수 일본 현지법인의 경우 모든 직원들이 업무를 중단한 채 사무실을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휴대폰 등 통신망이 거의 마비되면서 도쿄 사무소 직원들은 인터넷 메신저로 피해 상황을 본사에 보고했다. 신환섭 KOTRA 도쿄센터장은 "계속해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