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림하이'서 열혈교사 강오혁 역
엄기준 "내가 바라던 선생님상 연기했다"
배우 엄기준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이었다' '선생님 정말 멋있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이달초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드림하이'의 영향이다.

엄기준은 '드림하이'에서 기린예고의 열혈 교사 강오혁을 연기했다.

최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말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강오혁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강오혁은 교내 평가에서 3년 연속 최하 등급을 받아 문제교사로 낙인 찍혔지만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교사다.

최고가 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한발한발 천천히 가라 하고 좌절해도 꿈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응원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월급을 차압 당하고 해고의 위기에 처하면서까지 학생들이 무대에 서도록 돕고 학생들을 키워줄 기획사를 찾기 위해 발로 뛴다.

그는 "실제 강오혁의 모델은 없지만 누구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음에 남는 선생님들이 한 두분 있을 것"이라며 "그런 얘기를 참고해 좋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강오혁은 그가 이제껏 연기해왔던 인물들과 달랐다.

"전작 '히어로'의 강해성은 나 혼자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인물이었어요. 래서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연락이 왔죠. 캐릭터도 달랐지만 강오혁이 제 나이보다 많은 38~39살이었다는 점에서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연기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난관이 닥쳤다.

바로 엄청난 대사량.
드라마 팬 사이에서 강오혁은 '명언 담당'이라 불릴 정도로 숱한 명대사를 쏟아냈다.

대부분 홀로 대중을 향해 이야기하거나 학생들에게 하는 조언이었기에 상대 배우의 리액션 없이 혼자 긴 대사를 읊어야 했다.

"7회 방송된 가짜 쇼케이스 장면에서는 대본 4장이 넘어가도록 강오혁이 혼자 얘기하더라고요. 대본을 먼저 읽어본 스타일리스트가 저보고 '계 탔다'고 했어요. (웃음) 3일 전부터 대사를 외워서 다행히 NG 한 번 내고 오케이가 났죠."

그는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오혁의 대사로 11회에서 혜미(배수지)에게 했던 '천천히 가면 빨리 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를 꼽았다.

"처음부터 너무 주목받기 시작해 버리면 많은 걸 못 보는 것 같아요. 밑에서부터 힘든 과정과 기다림을 알아야지만 성숙한 연기나 노래가 나온다고 봐요. 저도 그렇게 온 스타일이고요. 천천히 꾸준히 하나씩 배워가면서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길 아닐까요."

엄기준은 '드림하이'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연기경력 1년 미만이 대부분인 후배들에게 그는 카메라 안 뿐 아니라 밖에서도 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새벽에 라면 끓여주는 선배"로 정의했다.

"제가 라면용 전기 포트 하나를 차에 갖고 다녀요. 새벽 2~3시가 되면 간식이 나오는데 차디찬 햄버거에요. 추우니까 다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잖아요. 그래서 3~4시쯤 되면 제가 라면을 끓여요. 딱 4개 들어가는데 다 끓이면 애들을 부르죠. 얼굴 부을까 걱정해서 안 먹을 거 같은데 다들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요.(웃음)"

그는 아이돌 배우들에 대해 "너무 착했다"며 "놀라웠던 건 힘든 일정에도 힘든 티를 전혀 안 냈다는 거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스타가 된 친구들이라 그런지 내공 같은 게 있더라"고 칭찬했다.

후배들의 열정에 놀란 그를 더 놀라게 한 사람은 박진영이었다.

박진영은 강오혁의 친구인 영어교사 양진만을 연기하며 신인답지 않은 능청스런 연기로 호평받았다.

"연기하려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영이형은 진짜 느껴서 하는 사람이에요. 게다가 감정 전달까지 잘해요. 상대 배우와 호흡에서 조금 미흡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항상 부족한 점을 얘기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인생 자체가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드림하이'는 배우로서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출연작 중 최초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오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촬영 중 뮤지컬을 했는데 뮤지컬 스태프와 배우들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K가 누구냐, 누구랑 누구랑 이어지냐며…다른 드라마를 할 때는 별 관심이 없더니 이번에는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웃음)"

'드림하이'를 촬영하면서 뮤지컬 '삼총사'를 공연했던 그는 '드림하이'가 끝나자마자 다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무대에 섰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뮤지컬을 놓지 않는 이유를 그는 노래와 연기를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오가며 쉴 틈 없이 연기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그는 되레 쉬는 걸 못 견딘다고 했다.

그는 "연기할 때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대에 선다"고 했다.

데뷔 이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느낀 것이 있다면 "장르는 달라도 연기의 본질은 똑같다"는 사실이다.

"장르를 떠나 제가 느끼는 것을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같이 느끼게끔 하는 게 배우의 몫인 거 같아요. 배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대중이 그 삶을 같이 느끼게끔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현장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에 비해 사람들끼리 친해질 시간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제가 먼저 못 다가가는 스타일이에요. 낯을 좀 가려서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려요. 16부작 드라마는 보통 4개월을 작업하는데 방송이 3~5회쯤 나가면 친해져요. 그전에 친해지면 연기할 때도 좋을 텐데 아쉬워요."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okk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