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유로존 재정안정기금(EFSF)의 실질 대출여력을 두 배 가까이 늘리기로 합의했다. 최근 유로존 변방국 신용등급이 잇따라 강등되고,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진 데 따른 대응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12일 "유로존 정상들이 브뤼셀에서 가진 긴급정상회의에서 EFSF의 실질 대출여력을 기존 2500억유로에서 4400억유로(660조원)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없애려면 구제금융 재원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로존 국가들은 오는 24~25일 정상회의를 다시 열고,합의 내용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EFSF가 출범할 당시 기금의 최대 대출여력을 4400억유로로 책정했지만,실질 대출여력은 2500억유로에 그쳤다. EFSF가 최고 수준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원활하게 국채를 발행하기 위해선 1900억유로 정도 현금을 담보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EFSF의 실질 대출여력을 증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럽 변방국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이와 함께 유로존 정상들은 "2013년 현재의 EFSF를 대체해 상설 기구로 출범할 유로안정화기구(ESM)의 경우 실질 대출여력을 5000억유로로 책정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당초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각국은 자국의 부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앞으로 보다 엄격한 기준하에서만 구제금융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장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단 안정화 쪽에 힘을 실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빠른 시간 안에 시장 불안에 대한 대책을 내놓길 바라는 시장 압력으로 당초 예상보다 빨리 합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에선 소위 재정위기 탈출을 위한 자구책 강화를 요구하는 '유로협약'이 채택됐지만 지난달 독일과 프랑스가 제시했던 수준에선 다소 퇴색했다. 이번 유로협약에 따라 유로존 회원국들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고,노동생산성을 강화하는 데 공조키로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취할 제재 조치를 명문화하진 못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선 그리스에 제공한 구제금융 상환기한을 국제통화기금(IMF) 차관과 동일하게 7년6개월로 연장하고 연 5.8%였던 금리도 4.8%로 1%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