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높은 '트레이드형'
원하는 팀 동기와 입 맞춘 뒤 동시에 각 팀장에게 이동 요청
좋은게 좋은 '노홍철형'
옮기고 싶은 팀 회식에 '개근'…자연스럽게 존재감·능력 어필
입사 성적도 뛰어나고,수습 교육 때 평가도 좋았지만 그가 발령 받은 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신 못 나온다는 기피부서였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해마다 성과급을 두둑이 챙겨가는 동기들을 볼 때면 후회가 밀려온다. 2,3년차엔 '열심히 일하면서 이동 신청하면 언젠간 받아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이젠 탈출할 때가 됐다. 인사팀 동기 얘기론 한 부서에서 3년을 기여하면 일명 '프리에이전트(FA)'자격은 얻는다고 했다. 더 미적거렸다간 퇴직 때까지 이 부서에서 뼈를 묻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모 아니면 도'…배수진형
대형 전자 기업 S사에 근무하는 박 모 과장은 입사 3년차인 평사원 시절 인사팀을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 본인이 속해 있는 컴퓨터 사업부는 회사에서 투자도 지지부진하고,전망도 보이지 않아 부서를 옮겨 주지 않으면 퇴사해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그만의 '최후 통첩'이었다.
박 과장은 이미 모교의 대학원에 응시해 합격증도 받아뒀던 터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베팅'을 해봤다. 나름대로 '당차게 나간'결과는 예상 외였다. 박 과장은 대기 인원이 줄 서 있다는 휴대폰 사업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대학원 진학은 없었던 일이 됐고….
대기업 S사의 입사 4년차 박 모씨는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끝에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서울 집과 지방 사업장을 주말마다 오가던 그는 몇 번이나 부서이동을 요구했다 부장에게 '회사에 정 없는 놈'으로 찍히기까지 했다. 결국 경쟁사인 L사 입사시험에 합격한 그는 인사팀을 찾아가 "이동이 안 되면 L사로 옮기겠다"고 '벼랑 끝 전술'을 썼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던 인사팀은 그의 요청을 들어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섣불리 배수진을 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부서를 옮겨달라며 태업하던 인터넷솔루션 업체의 고 주임은 결국 인사철에 아무 부서에서도 데려가지 않은 채 팀에서 미운털만 박히게 됐다.
◆'아는 게 힘'…정보형
정보력이 있으면 휠씬 안전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정유사에 다니는 김 모 대리는 희망부서인 운영,영업,재무 등 3개 팀을 타깃으로 사전 작업을 했다. 우선 해당 팀원들을 모두 만나 인력 충원이 필요한 곳은 어딘지,누가 그 팀을 나갈 때가 됐는지 등을 탐문했다. 그 결과 IR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정보를 확인한 뒤엔 그쪽으로 올인해 올초 대리 승진과 함께 부서를 옮길 수 있었다.
대기업 H사 기획팀에 있던 문 대리는 동기와 함께 맞트레이드 작전을 펼쳐 부서 이동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본인이 원하는 부서로 들어가기 위해선 누군가 빠져야 하는 만큼 사전에 본인들끼리 맞트레이드 구도를 만드는 '기지'를 발휘했다. 문 대리는 인사팀에서 기획팀으로 옮기기를 원하던 동기와 공동 작전을 펼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팀장에게 이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들의 맞트레이드에 팀장들도 흔쾌히 OK 했다.
잡지사 미용팀의 양 모 기자는 노른자위인 패션팀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패션팀장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패션팀장이 그만두게 된다면 그 자리엔 절친인 미용팀장을 추천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날부터 그는 평소 데면데면하게 대하던 팀장 '구워삶기'에 나섰다. 점심도 늘 함께하고,팀장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6개월 뒤 패션팀장은 눈에 띄게 부른 배로 사직서를 냈다. 양기자의 예상대로 팀장과 그는 함께 미용팀에서 패션팀으로 옮겼다.
◆'웬만하면 형님'…노홍철형
송 대리는 평소에는 몸매 관리하느라 술자리는 자제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인사이동 시즌은 달랐다. 희망부서인 영업팀 회식 장소를 파악한 뒤 미리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자연스레 합류하는 전략을 썼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이돌그룹의 노래와 댄스도 연마했다. 같은 동네,같은 대학 등 각종 인연으로 선후배를 엮었고,업무 성과도 은연중에 자랑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해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평소에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라 대리도 인사철을 앞두곤 이른 아침부터 회사 건물 안 헬스장을 들락거렸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도,몸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가고 싶은 부서의 부장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라 대리는 "평소에는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지만 부장이 운동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다"며 "러닝머신 위에서 함께 얘기 나누면 건강하고 부지런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긴 올 데가 못 돼"…블로킹형
인사철이 되면 동료들에게 조언해 주는 척하면서 자기부서를 험담하는 직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홍보를 천직'으로 여기는 소비재 업체 직원 홍대리.그는 인사시즌만 오면 후배들과 술자리를 만들어 푸념을 늘어 놓는다. 기자와의 관계에서 늘상 '을(乙)'의 입장이 생활화돼야 하고,비판 기사에 대한 걱정으로 항상 '긴장 모드'로 산다는 식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홍보직을 선호하는 후배들의 홍보팀 전입을 '블로킹'하기 위해서다. 그의 작전이 먹혀서인지 아직까지 홍보부서를 지원하는 직원이 없다고….
회사를 옮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직장 내 부서 옮기기.승진만큼이나 직장인들의 큰 관심사이지만,이 역시 왕도는 없다. 부서 이동으로 고민하고 있는 김 대리의 한마디."부서 이동 카드는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고,옮긴 부서에서 적응 못했다간 조직 부적응자로 찍힐 수 있어요. 문어발식으로 여기저기 찔러봤다가 부서도 못 옮기고 원래 부서에서 자체 야근 모드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선배들의 얘기가 마음에 남네요. "여전히 망설이는 김 대리.그의 머리가 더 아파졌다.
조재희/강경민/강유현/고경봉/노경목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