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도널드슨 미국 대통령 경제회복자문위원은 '6 · 25 참전용사'다. 예일대를 졸업한 직후인 1953년 해병대에 입대, 한국전에 자원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과 뉴욕증권거래소(NYSE) 최고경영자 등을 지낸 그는 "한국에서의 해병대 복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발전상을 지켜보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해병대 출신답게 그의 말투는 분명했다. 또박또박한 어조로 최근의 경제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도널드슨 위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실시하고 있는 양적 완화 조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전에 종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는 만큼 한국을 포함한 각 나라는 이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한국 경제 전망은 아주 좋다"며 "시장의 투명성과 합리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갖추면 외국인 투자도 늘어나고,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지난 9~10일 개최한 '2011 세계 경제 · 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도널드슨 위원을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이 만났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는 금융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뉴욕이었습니다. 월가의 탐욕을 방치한 게 문제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요.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같은 위기를 초래한 데는 월가의 지나친 탐욕이 한몫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탐욕을 규제하지 못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었던 거고요. "

▼탐욕에 대한 책임을 월가가 지지 않고 정부가 구제한 데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월가 스스로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의회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입법과 행정 규제를 통해 적절한 통제를 가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더 중요합니다. "

▼미국은 양적 완화를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하며 글로벌 시장에 과잉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도 많지만,부작용도 빚어지고 있죠.중동 ·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소요는 이런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급등 탓에 불거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FRB가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게 느껴집니다. 성장률이나 실업률이 점진적이나마 개선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관건은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전에 이 같은 조치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상당한데요.

"궁극적으로 저금리 기조는 미국과 다른 국가에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음식 연료 생필품 부문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 징후가 보이고 있고요. 인플레이션은 한번 시작되면 멈추게 하기 쉽지 않은 만큼 FRB가 중기적으로 긴축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양적 완화는 언제쯤 종료될 것으로 봅니까.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 가격 수준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식품이나 원자재 값은 많이 올랐지만 인플레이션은 아직까지 제자리 수준입니다.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양적 완화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위안화 절상으로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는 왜 위안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겁니까.

"그동안 세계 무역 불균형이 심각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미국은 지나치게 소비했고,저축은 거의 안했습니다. 중국은 반대로 소비는 하지 않고 저축만 했죠.양국 정부는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중국은 소비를 진작시키고,미국은 소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위안화 절상은 그런 노력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

▼구체적으로 중국에 요구하는 세계 경제에서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모든 국가는 세계화 진전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상이 높아진 만큼 책임과 의무도 커져야 하는 거죠.미국은 현재 9%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고용을 늘리기 위한 다각적인 정책을 펴고 있죠.중국은 그동안 잉여자본을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유가 증권에 투자해 왔습니다. 이들 투자자산에 대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미국 내 실업률이 낮아지고 성장률이 높아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중국의 이익과도 부합하는 겁니다. "

▼중국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해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달러화는 기축통화 지위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달러화가 갖고 있는 역할의 일정 부분을 점진적으로 대체할 통화가 나올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

▼한국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 시장참가자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4.2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예상한 5%의 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미국과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이 늘고 있고,내수시장도 견실합니다. 노동시장도 안정돼 있습니다. "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인데,한국 경제의 변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플레이션입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죠.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에 주목하고 있는 동안 다른 부문에서도 광범위하게 물가가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예상치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한국의 자본시장 인프라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유럽식의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습니다. 미국 독일 중국에 비해 한국이 새롭게 리더로 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한국은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가 있죠.만약 이 같은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되고 정보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방향의 규제 개혁이 이뤄진다면 자본시장 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

서울이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경쟁 상대를 제치고 동북아 금융 허브로 자리잡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적절한 시장 규제와 투명성,합리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갖추는 게 필수 조건이 아닐까요. 그래야만 외국인들도 안심하고 한국 시장에 투자하고 거래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를 함께 활성화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 · 미FTA가 체결돼 한국 경제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활력과 역동성이 살아난다면 서울이 동북아 금융 중심지로 가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

대담=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정리=이호기/김우섭 기자 hglee@hankyung.com


◆ 도널드슨 경제자문위원은…
부시 때 SEC 위원장 역임…美해병대원으로 6·25 참전

1931년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서 출생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취득했다. 윌리엄 H.태프트,조지 H.부시,조지 W.부시 등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명사들이 가입해 활동했던 예일대 비밀결사조직인 '스컬 앤 본즈' 출신이다. 조지 H.워커 증권에 입사,금융계에 입문했다. 이후 1959년 투자금융회사인 '도널드슨 러프킨 앤드 제레트'를 설립했다. 건강보험그룹인 이트나의 최고경영자(CEO),뉴욕증권거래소(NYSE) CEO,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2년 말부터 2년반 동안 SEC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월가의 부조리를 캐는 데 앞장섰다. 당시 규제가 미치지 못했던 헤지펀드에 대해 고객 15명 이상,25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법인은 무조건 SEC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만든 경제회복자문위원회(PERAB) 위원을 맡고 있다.

△1931년 미국 뉴욕주 버팔로 출생 △1953년 예일대 졸업 △1953년 미 해병대 복무,한국전쟁 참전△1958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MBA) 졸업△1959년 투자금융회사인 '도널드슨 러프킨 앤드 제레트' 설립 △1975년 예일대 경영대학원 설립 및 초대 학장 역임 △1980년 '도널드슨 엔터프라이즈' 설립 △1990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최고경영자(CEO) △2000년 이트나(Aetna) CEO △2003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직속 경제회복자문위원회(PERAB)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