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반도체 나프타 에틸렌 등의 국제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의 생산시설 타격 및 이에 따른 제품 공급 부족 우려가 시장에 본격 반영되고 있어서다.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등 전기 · 전자,유화,철강 등의 국내 업체들은 단기적으로 수혜를 누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4일 국내 증권시장에서 하이닉스반도체(8.66%) LG디스플레이(4.29%) 호남석유(11.11%) LG화학(5.41%) 등 일본업체들과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는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만은 없다"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 · 전자 등의 핵심 부품 및 소재를 일본에서 조달받고 있는데다 일본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한국 기업들에도 그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내달까지 가격 상승 가능성"

이날 국제 반도체 가격은 급등세를 나타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32기가비트(Gb)와 16Gb 현물가격은 5.92달러와 4.68달러로 급등했다. 전날 대비 각각 17.7%,17.0% 오른 것이다. D램은 1Gb DDR3와 2Gb DDR3 현물 가격이 전날 대비 6.8%,6.5% 오른 1.11달러와 2.12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작년 4~5월 고점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다 약 10개월 만에 반등세를 나타낸 것이다.

국내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도시바 이와테현 낸드플래시 공장이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작년 기준으로 세계 D램 시장의 약 10%,낸드플래시는 약 35%를 공급했다. 특히 "도시바의 경우 전 세계 낸드플래시 공급량의 약 7%(9만장)에 해당하는 웨이퍼 생산시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란 추정(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도 나왔다. 이에 따라 반도체 가격은 다음달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LCD 가격도 단기 반등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이 수혜를 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수혜 정도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일본 LCD업체인 샤프와 파나소닉은 글로벌 점유율이 각각 3.9%(5위)와 1.8%(8위) 수준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은 자체 생산한 패널을 자사의 TV 등 전자제품에 적용하는 '자급자족적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설령 이번 지진으로 생산설비가 크게 타격을 받았더라도 LCD 패널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국내 전자업체들은 제품 가격 상승이 중장기적 측면에서 반드시 호재로만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 웨이퍼,LCD 필름 등 핵심 소재 및 부품의 상당량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상황이어서 일본 산업계의 복구 작업이 늦어지면 국내 업체들도 생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의 생산 및 소비 저하에 따른 글로벌 경기 위축 가능성도 장기적 악재"라고 밝혔다.


◆나프타 가격은 하락세 이어갈 듯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유분인 나프타는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센다이 가시마 지바 등 이번 대지진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일본 동북부 유화업체들의 가동이 멈춘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1일 t당 985달러였던 나프타 가격은 이날 홍콩 현물거래 시장에서 t당 950달러까지 떨어졌다. JX 닛폰오일,마루젠,미쓰비시화학 등 주요 나프타 분해(NCC) 업체들의 가동이 멈추면서 향후 나프타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 합성수지(플라스틱) 기초 원료인 에틸렌 가격은 당분간 강세를 띨 것이란 분석이다. 세계 4위 규모의 에틸렌 생산규모(연간 800만t)를 가진 일본 석유화학 공장들이 연쇄적인 전력 공급 부족으로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위 에틸렌 수출국인 일본의 공급이 급감하면 가격이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현재 t당 1300달러대인 에틸렌 가격이 상반기 중 1400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JFE스틸의 지바제철소(연 800만t 생산),스미토모금속의 가시마제철소 등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업체와 경쟁을 벌이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한국과 일본 철강업체들의 수출은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각각 56%와 57%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굴삭기 등 건설기계업종도 일본과 경쟁하는 중국 등의 시장에서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상열/이정호/장창민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