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저멀리 산너머 남촌에서 올라올 '꽃소식'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새로운 과업에,학생들은 새학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변덕스런 날씨에 휘둘리면서 늘 피로감을 느끼는 '춘곤증'과 점심 식사 후 오후에 잠이 쏟아지는 '식곤증'으로 휘청거리기 쉽다.

지난 1월 취업포탈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22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피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9.7%가 '항상 피로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어 '자주 느낀다'(35.8%),'가끔 느낀다'(22%) 순이었고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희한하게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많은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로를 느끼는 원인으로 '업무 스트레스'(68.4% · 이하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고 '수면 부족'(55.4%),'인간관계 스트레스'(53.4%),'운동부족'(43.4%),'경제적 스트레스'(27.3%),'과음'(14.7%),'잘못된 식생활'(12.3%),'급격한 체중 변화'(11.3%),'가정 스트레스'(9.2%) 등이 뒤를 이었다.


춘곤증으로 인한 피로감은 겨울에 비해 밤시간이 짧아지고 신진대사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비타민 무기질 등 대사를 촉진하는 영양소들이 부족해서 생긴다. 생리적 호르몬 변화도 중요한데 겨울에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코티솔이 다량 분비되다가 봄이 돼 기온이 올라가면 분비 패턴이 변화,적응하는데 2~3주간의 시간이 필요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졸업 전근 취직 새업무 등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스트레스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성 피로에 노출돼 있다. 200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0%가량이 스트레스를 받고,여성은 53%가 가정생활로 인해 스트레스를 느낀다. 주부들은 경제적 어려움,우울증 또는 불안감,남편과 자녀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다.

어린이들도 심야까지 학원에 끌려다니는 학업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몸안의 면역계 및 내분비계의 균형이 흐트러져 질병에 취약해지므로 잘 다스려야 한다.


비타민B군 넉넉하게 섭취하고 충분한 수면·운동으로 스트레스 싹~

춘곤증과 스트레스성 피로를 이기는 데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한민 근로복지공단 안산산재병원 내과 과장은 "규칙적인 생활,고른 영양섭취,가벼운 운동,충분한 수면 등만 제대로 실천해도 웬만한 피로감은 싹 가실 것"이라며 "봄에는 기력이 많이 소모되는 계절이므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건강관리로 2~3주간의 춘곤증 시기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을 세끼 식사에 고루 분배하고 피로를 유발하는 음주와 흡연을 삼가야 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혈당이 부족해 오전 중 뇌 활동이 둔화되고 점심을 많이 먹게 돼 식곤증에 빠지게 된다. 봄철에는 평소보다 비타민 소모량이 3~5배 늘어나므로 충분히 보충한다. 특히 스트레스성 피로에는 비타민B군의 넉넉한 섭취가 권장된다.

뇌내 세로토닌은 평소 기분이 좋고 차분해지면 분비되는 물질로 격한 마음이나 화를 가라앉히며 스트레스나 고민,갈등,잡념을 없애주는 기능을 한다. 이런 세로토닌은 적절한 아미노산과 비타민B군 섭취,아침에 일어나 태양빛을 받으며 가볍게 운동하는 습관,명상과 같은 심신수련을 통해 생성과 분비가 증가된다.

비타민 미네랄 등의 하루섭취권장량(RDI)은 건강한 사람의 95%가 영양결핍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양을 규정한 것이다. 하루최적섭취량(ODI)은 일부 과학자들이 피로와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이 모든 영양소의 필요량을 음식물로만 충족시킬 수 없다고 의심해 적극적인 건강증진과 치료를 위해 다량 복용토록 설정한 양이다.

보통 RDI의 수십~수백 배 수준으로 규정했다. 비타민B군과 C,E는 최적섭취량을 복용하는 게 섭취권장량을 먹는 것보다 이점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많지만 비타민D나 철분 구리 등은 양자 간에 큰 효과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면 몸의 노폐물이 연소되고 순환기와 내분비계,면역계가 활성화돼 침대에 푹 퍼진 것보다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봄철에는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지기 쉽다. 성인에게 필요한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안팎이다. 낮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려면 6시간만 자도 문제 없다. 하지만 낮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계속되면 수면의 질이 매우 낮다는 의미다.

취침 환경(조명 온도 소음 등)에 안정돼 있는지,수면무호흡증후군(중증 코골이)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신철 고려대 안암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는 "이런저런 이유로 밤잠을 설쳤다면 점심식사 후 15분 이내의 토막잠을 자는 게 좋고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겠다고 주말에 장시간 잠을 자면 피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잠자기 전에는 마음을 비우고 침실을 잠자는 곳으로만 활용하며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봄철 수면부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음주와 스트레스,균형이 깨진 영양섭취로 떨어진 간기능을 회복해 주는 것도 만성피로를 사그러들게 하는 방법이다. 간은 단백질 등 거의 모든 영양소의 대사에 관여하고 혈액 및 영양분의 저장,해로운 물질의 해독,알코올 대사,배뇨,쓸개즙의 생성과 배출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나 독소가 잘 배출되지 않아 피로감이 가중된다.

이를 방치하면 지방간과 간염으로 악화되고 심한 경우 간경화나 간암에 이를 수 있다. 간은 80%가 망가져도 특별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침묵의 장기'이므로 절주 등 간의 휴식,간에 유익한 아미노산 섭취,간기능 활성물질 섭취를 통해 돌보는 게 좋다. 우루소데옥시콜린산(UDCA) 성분의 의약품은 간 내 미세담도를 깨끗이 청소해 간에 축적된 노폐물을 신속하게 제거한다. 또 간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신진대사를 촉진해 간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지혈증 및 지방간의 개선,콜레스테롤 저하,담석증 예방,대장암 예방,스트레스 완화 등에도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독성을 유발하지도 않으며 잉여분은 체외로 전부 배출돼 축적되지 않는다.

만성피로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 혹은 반복적으로 나타나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지장을 주며,휴식이나 수면을 취해도 피로 증상이 없어지지 않는 만성피로증후군(CFS)인 경우에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은 '단순한 피로 및 권태'에 대해서는 보험혜택을 주지 않지만 CFS는 질병으로 분류,보험급여를 준다. CFS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전염성 물질,내분비계 장애,심리학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담배를 끊어야 하며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또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 고혈압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며 △제 시간에 균형잡힌 식사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