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column of the week…공기업 민영화 키워드는 가격이 아니라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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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히크 바타차르야 칼럼니스트
지난달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사 가루다의 민영화는 '실패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제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초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기업공개(IPO) 때 공모가격 책정을 잘못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주당 750~110루피아(9~12센트)는 주간사들이 자문했던 가격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예상 가능한 대로 공모 청약의 40%가 미달됐고,주가는 거래 첫날 17% 급락했다.
지금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가루다항공의 '실패한' IPO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민영화 추진에서 한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판두 자잔토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담당 차관은 올해 한 기업만 추가로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했던 5~10개에 비해 대폭 줄이겠다는 얘기다. 가루다 민영화 실패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바뀔 것이라던 시장의 예측을 확인해 준 것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장기간 지속돼 온 국영기업 민영화 관련 가격논쟁의 희생양이었다. 가루다항공은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른 것이 '원죄'였다. 그러나 이전의 사례들 가운데는 매각 가격을 너무 낮게 매긴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IPO를 통해 2조6800억루피아(2억9900만달러)를 조달한 크라카타우철강은 거래 첫날 50% 급등했다. 많은 이들은 정부가 좀 더 많은 매각대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정한 가격산정을 놓고 다투는 사이에 정치인들은 민영화를 시행하는 중요한 경제적 이유를 놓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매각 가격은 민영화가 정부와 사회 전체를 위해 창출해내는 가치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일본 자동차회사 스즈키와 인도 국영 자동차회사 마루티가 1983년 합작법인으로 세운 마루티-스즈키의 사례를 보자.인도 정부는 199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 합작법인의 주식을 매각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졌다. 특히 스즈키가 2002년 다수지분을 확보한 뒤 회사가 훨씬 강해졌다.
R C 바르가바 마루티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이 훨씬 유연해지고 집중화됐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2001년 기록적인 손실을 낸 이 회사의 턴어라운드(기업회생)에 도움을 줬다. 더 중요한 것은 스즈키가 '운전석에 앉은 이후' 기술 · 개발(R&D)투자를 활성화했고 일본 자동차 모델을 인도에 소개했다. 마루티는 현재 인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2000년 민영화된 대만 청화텔레콤 사례도 보자.통신산업의 규제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1990년대 말까지 청화텔레콤의 독점적 지위는 약화됐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이 '국영 챔피언'은 정치적 결정들에 휘둘렸다. 그러나 민영화로 일단 정부가 손을 떼자 청화텔레콤은 구조조정을 하고 마케팅과 고객서비스를 강화했다. 청화텔레콤은 금융월간지 '파이낸스아시아'가 지역 내 300개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최근 2년 연속 대만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마루티-스즈키와 청화텔레콤도 민영화 당시엔 '가격'이 논쟁거리였다. 인도 정부가 1992년 마루티의 지분 10%를 매각할 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시 맘모한 싱 재무장관이 너무 헐값에 매각한다고 비판했다. 2003년 이 회사가 IPO를 할 때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너무 비싸다고 우려했다.
대만 정부는 청화텔레콤을 민영화할 때 단계마다 금액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그 결과 몇 번의 공모과정에서 시장 반응이 뜨뜻미지근했고,정부는 너무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들은 민영화라는 큰 그림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영화의 이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마루티와 청화텔레콤의 사례뿐만 아니다. 오클라호마대의 윌리암 메긴슨 교수 등이 모은 각종 사례는 민영화가 어떻게 꽁꽁 묶여있던 자본을 '해방'시켜 경제성장에 활용되도록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관료사회에선 결코 생각해 내기 힘든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은 민영화 이후 평균적으로 20% 향상됐다.
정치인들은 '가격' 논쟁에 함몰돼 이런 사실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2004년부터 인도 정부를 이끌어 온 싱 총리는 현재 국영자산 매각을 복지정책 확대 등을 포함한 재정운영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은 정부가 (국영자산 매각 시) 충분한 대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늘 문제를 제기한다. 일단 정치적 논쟁이 이처럼 옆길로 빠지면 인도네시아처럼 향후 인도의 민영화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가격산정'은 항상 논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보다 큰 그림을 마음에 담고 있으려면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매각가격이 너무 낮으면 정부는 재정적인 손실을 우려하고,국민들은 정실주의를 우려할 것이다. 반면 매각가격이 너무 높으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민영화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매각자산의 가격 산정은 정부가 태생적으로 잘하기 힘든 일종의 전략적 비즈니스 결정이다. 정부는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산을 시장에 매각하겠다는 바로 그 결정 말이다.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한경 제휴
지금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가루다항공의 '실패한' IPO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민영화 추진에서 한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판두 자잔토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담당 차관은 올해 한 기업만 추가로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했던 5~10개에 비해 대폭 줄이겠다는 얘기다. 가루다 민영화 실패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바뀔 것이라던 시장의 예측을 확인해 준 것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장기간 지속돼 온 국영기업 민영화 관련 가격논쟁의 희생양이었다. 가루다항공은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른 것이 '원죄'였다. 그러나 이전의 사례들 가운데는 매각 가격을 너무 낮게 매긴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IPO를 통해 2조6800억루피아(2억9900만달러)를 조달한 크라카타우철강은 거래 첫날 50% 급등했다. 많은 이들은 정부가 좀 더 많은 매각대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정한 가격산정을 놓고 다투는 사이에 정치인들은 민영화를 시행하는 중요한 경제적 이유를 놓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매각 가격은 민영화가 정부와 사회 전체를 위해 창출해내는 가치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일본 자동차회사 스즈키와 인도 국영 자동차회사 마루티가 1983년 합작법인으로 세운 마루티-스즈키의 사례를 보자.인도 정부는 199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 합작법인의 주식을 매각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졌다. 특히 스즈키가 2002년 다수지분을 확보한 뒤 회사가 훨씬 강해졌다.
R C 바르가바 마루티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이 훨씬 유연해지고 집중화됐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2001년 기록적인 손실을 낸 이 회사의 턴어라운드(기업회생)에 도움을 줬다. 더 중요한 것은 스즈키가 '운전석에 앉은 이후' 기술 · 개발(R&D)투자를 활성화했고 일본 자동차 모델을 인도에 소개했다. 마루티는 현재 인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2000년 민영화된 대만 청화텔레콤 사례도 보자.통신산업의 규제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1990년대 말까지 청화텔레콤의 독점적 지위는 약화됐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이 '국영 챔피언'은 정치적 결정들에 휘둘렸다. 그러나 민영화로 일단 정부가 손을 떼자 청화텔레콤은 구조조정을 하고 마케팅과 고객서비스를 강화했다. 청화텔레콤은 금융월간지 '파이낸스아시아'가 지역 내 300개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최근 2년 연속 대만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마루티-스즈키와 청화텔레콤도 민영화 당시엔 '가격'이 논쟁거리였다. 인도 정부가 1992년 마루티의 지분 10%를 매각할 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시 맘모한 싱 재무장관이 너무 헐값에 매각한다고 비판했다. 2003년 이 회사가 IPO를 할 때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너무 비싸다고 우려했다.
대만 정부는 청화텔레콤을 민영화할 때 단계마다 금액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그 결과 몇 번의 공모과정에서 시장 반응이 뜨뜻미지근했고,정부는 너무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들은 민영화라는 큰 그림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영화의 이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마루티와 청화텔레콤의 사례뿐만 아니다. 오클라호마대의 윌리암 메긴슨 교수 등이 모은 각종 사례는 민영화가 어떻게 꽁꽁 묶여있던 자본을 '해방'시켜 경제성장에 활용되도록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관료사회에선 결코 생각해 내기 힘든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은 민영화 이후 평균적으로 20% 향상됐다.
정치인들은 '가격' 논쟁에 함몰돼 이런 사실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2004년부터 인도 정부를 이끌어 온 싱 총리는 현재 국영자산 매각을 복지정책 확대 등을 포함한 재정운영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은 정부가 (국영자산 매각 시) 충분한 대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늘 문제를 제기한다. 일단 정치적 논쟁이 이처럼 옆길로 빠지면 인도네시아처럼 향후 인도의 민영화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가격산정'은 항상 논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보다 큰 그림을 마음에 담고 있으려면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매각가격이 너무 낮으면 정부는 재정적인 손실을 우려하고,국민들은 정실주의를 우려할 것이다. 반면 매각가격이 너무 높으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민영화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매각자산의 가격 산정은 정부가 태생적으로 잘하기 힘든 일종의 전략적 비즈니스 결정이다. 정부는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산을 시장에 매각하겠다는 바로 그 결정 말이다.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한경 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