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세계골프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프로골퍼로 샌디 라일(54 · 스코틀랜드)이 있다.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그는 1985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했고 1988년에는 영국인으로는 최초로 마스터스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닉 팔도와 이안 우즈넘 등 또래의 '빅 네임'들도 라일이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이후에야 그린 재킷을 걸칠 수 있었다.

그는 1979,1980,1985년 유러피언투어 상금왕을 했고 1986년부터 1989년까지 167주간 세계랭킹 10위권을 유지했다. 1987년에는 '제5의 메이저대회'로 알려진 플레이어스챔피언십 타이틀을 유럽 선수 최초로 거머쥐기도 했다.

1977년 유러피언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라일은 이듬해 투어 '올해의 신인'에 뽑히고,1979년엔 저지오픈을 시작으로 투어에서 3승을 올릴 만큼 전도양양했다. 1979년과 1980년에는 샘 토런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대표로 월드컵에 나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92년 볼보마스터스 우승을 끝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현재 타이거 우즈보다도 세 살이나 어린 34세에 불과했다.

라일이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는 19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라일은 지난 13일 중국 선전의 미션힐스CC 월드컵코스에서 열린 유러피언 시니어투어 혼다 시니어월드챔피언십에서 3라운드 합계 12언더파 204타로 호주의 피터 파울러를 3타차로 제치고 감격의 우승컵을 안았다. 프로 데뷔 34년차인 그는 프로통산 18승을 거둔 지 19년 만에 19승째를 따냈다. 라일은 "너무 오래 기다린 우승이라 그런지 더 달콤하다. 우승한 지 4~5년만 지나도 다시 우승하기 쉽지 않은데 거의 20년 만에 우승했다. 그동안 우승 트로피를 쌓아 놓은 캐비닛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의 슬럼프는 길었다. 1997,1998년에는 고작 4~5개 대회밖에 나가지 못해 은퇴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대회에 나가도 성적이 좋지 않아 상금 수입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메이저대회 챔피언 자격으로 평생 출전권이 주어진 브리티시오픈과 마스터스에서 벌어들이는 출전수당 및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왔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라이더컵 유럽팀 감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본인도 강력히 희망했으나 막바지 콜린 몽고메리로 낙점되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것이 탈락 이유였다. 이 수모가 그를 자극한 것일까. 라일은 지난해부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6월 혼다 아이리시시니어오픈에서 9위에 오르면서 2002년 던힐링크스챔피언십 이후 8년 만에 첫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라일은 이번 우승으로 투어 상금랭킹 선두에 나섰다. 그는 혼다 호주시니어오픈에서 2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 열린 혼다컵 시니어마스터스에서는 공동 5위를 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가 올 시즌 4개 대회에서 벌어들인 상금 6만9402유로(1억1000만원)는 지난 3년간 벌어들인 총 상금액수(7만유로)와 맞먹는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