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 르포] "모노즈쿠리 대명사 히타치 올스톱…공장벽 무너지고 라인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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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같으면 매화축제로 북적
지금은 먹을 것 잠잘 곳 없는 '악몽의 도시'로 폐허화
지금은 먹을 것 잠잘 곳 없는 '악몽의 도시'로 폐허화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80㎞ 떨어진 이바라키현 히타치역 앞에는 거대한 조형물이 하나 우뚝 서 있다. 발전소용 터빈이다. 히타치제작소가 인근 공장에서 만드는 원자력발전소용 터빈을 히타치시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내놓은 것이다. 히타치제작소는 이 밖에도 TV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철도차량 등을 만드는 종합전기 제조업체다. 그러나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 11일부터 이바라키현 내 히타치 4개 공장은 올스톱됐다.
14일 오후 피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오미카 마을 공장 정문에는 '15일 휴업'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자 경비가 황급히 뛰어와 "무단 촬영은 안 된다"며 앞을 가로막았다. 대신 회사 돌아가는 형편도 알아볼 겸 매일 공장 주변을 자전거로 산책한다는 고바야시 씨에게서 회사 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제조부에서 발전소용 전자회로기판을 만든다는 그는 "지진으로 공장 벽이 무너지고 생산라인이 훼손돼 당분간은 조업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제조 기술 '모노즈쿠리(최고의 제품 만들기 정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히타치제작소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히타치공장뿐 아니라 이바라키현의 모든 일상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예년 같으면 매화축제 기간이어서 관광객들로 거리 곳곳이 가득 찼겠지만 지금은 사람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날도 규모 6.2의 여진이 이바라키현 전체를 뒤흔들어 주민들은 더욱 외출을 삼가는 모습이었다. 호텔 식당도 모두 문을 닫았다.
당장 기자는 숙식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히타치시에서 하룻밤 묵을 호텔을 찾아봤지만 숙박이 가능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지진으로 수도관이 파열되고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영업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게 종업원들의 설명.자칫하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이어서 무작정 파출소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바라키현의 현청이 있는 미토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열 군데가 넘는 호텔에 전화를 돌렸지만 대부분 불통이거나 예약을 정중히 거절했다. 다행히 "물이 없어 샤워가 불가능하고 식사도 안 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는 곳이 있어 그대로 예약했다.
히타치역은 대지진 이후 폐쇄됐고,버스가 없어 택시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다. 택시도 거북이걸음이었다. 전력 부족으로 전철이 운행 가능한 구간이 제한되면서 대거 도로로 몰려든 탓이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옆 도로에 장사진을 친 차량 행렬도 한몫했다.
이도 잠시.주유소 석유가 바닥나 '우리키레(매진)'라고 쓴 팻말이 나붙더니 도로는 운전자가 떠난 차들로 주차장이 됐다. 택시기사 기타조에 씨는 "25년간 차를 몰았지만 10㎞ 이상 정체가 계속되는 것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 30분이면 주파할 거리를 2시간 가까이 달렸다. 택시가 호텔 앞에 멈춰서자 미터기에 11,100(약 15만원)이라는 숫자가 떴다.
악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점심도 걸렀는데 저녁까지 굶게 됐다. 편의점은 만화책과 약간의 음료,개사료 등 애완동물용 식재료를 제외하곤 텅텅 비었고,음식점은 며칠째 불이 꺼져 있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14일 오후 피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오미카 마을 공장 정문에는 '15일 휴업'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자 경비가 황급히 뛰어와 "무단 촬영은 안 된다"며 앞을 가로막았다. 대신 회사 돌아가는 형편도 알아볼 겸 매일 공장 주변을 자전거로 산책한다는 고바야시 씨에게서 회사 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제조부에서 발전소용 전자회로기판을 만든다는 그는 "지진으로 공장 벽이 무너지고 생산라인이 훼손돼 당분간은 조업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제조 기술 '모노즈쿠리(최고의 제품 만들기 정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히타치제작소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히타치공장뿐 아니라 이바라키현의 모든 일상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예년 같으면 매화축제 기간이어서 관광객들로 거리 곳곳이 가득 찼겠지만 지금은 사람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날도 규모 6.2의 여진이 이바라키현 전체를 뒤흔들어 주민들은 더욱 외출을 삼가는 모습이었다. 호텔 식당도 모두 문을 닫았다.
당장 기자는 숙식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히타치시에서 하룻밤 묵을 호텔을 찾아봤지만 숙박이 가능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지진으로 수도관이 파열되고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영업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게 종업원들의 설명.자칫하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이어서 무작정 파출소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바라키현의 현청이 있는 미토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열 군데가 넘는 호텔에 전화를 돌렸지만 대부분 불통이거나 예약을 정중히 거절했다. 다행히 "물이 없어 샤워가 불가능하고 식사도 안 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는 곳이 있어 그대로 예약했다.
히타치역은 대지진 이후 폐쇄됐고,버스가 없어 택시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다. 택시도 거북이걸음이었다. 전력 부족으로 전철이 운행 가능한 구간이 제한되면서 대거 도로로 몰려든 탓이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옆 도로에 장사진을 친 차량 행렬도 한몫했다.
이도 잠시.주유소 석유가 바닥나 '우리키레(매진)'라고 쓴 팻말이 나붙더니 도로는 운전자가 떠난 차들로 주차장이 됐다. 택시기사 기타조에 씨는 "25년간 차를 몰았지만 10㎞ 이상 정체가 계속되는 것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 30분이면 주파할 거리를 2시간 가까이 달렸다. 택시가 호텔 앞에 멈춰서자 미터기에 11,100(약 15만원)이라는 숫자가 떴다.
악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점심도 걸렀는데 저녁까지 굶게 됐다. 편의점은 만화책과 약간의 음료,개사료 등 애완동물용 식재료를 제외하곤 텅텅 비었고,음식점은 며칠째 불이 꺼져 있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