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그룹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지역입니다. 케이피케미칼이 교두보를 형성한 이후 롯데제과가 진출했고,롯데건설은 인도에 있던 지사를 파키스탄으로 옮겼습니다. "

최근 서울 신대방동 롯데타워 내 집무실에서 만난 허수영 케이피케미칼 사장(60 · 사진)은 파키스탄 진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갔다. 허 사장이 주도한 파키스탄 PTA(고순도테레프탈산) 업체 인수는 롯데그룹의 해외 M&A(인수 · 합병)사상 최대 성공 케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케이피케미칼은 2009년 네덜란드 기업으로부터 파키스탄 PTA의 지분 75%를 145억원에 인수해 사명을 '롯데 파키스탄 PTA(LPPTA)'로 바꿨으며,이 회사는 인수 후 첫 2년 동안에만 인수금액의 10배가 넘는 1500억원의 경상이익을 거둬들였다. 주가도 인수 당시 주당 0.88루피에서 현재 15루피로 17배 이상 뛰었다. 허 사장은 이 같은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달 초 롯데그룹 임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M&A는 타이밍

허 사장은 국내외 대형 M&A를 여러 차례 성공시켜 롯데그룹 내 대표적인 M&A 전문가로 통한다. 롯데의 석유화학 주력사인 호남석유화학 임원 시절 이 회사의 성장 발판이 된 현대석유화학 인수를 성사시켰으며,케이피케미칼의 전신인 고합 M&A도 주도했다.

2008년 케이피케미칼 대표로 부임한 뒤엔 M&A 영역을 해외로 넓혀 파키스탄과 영국에서 PTA업체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파키스탄의 LPPTA의 경우 주당 0.88루피에 인수한 뒤 2년 동안 배당금으로만 1루피를 받아 단기간에 인수금액을 완전히 회수했다. 영국 법인 역시 고철값 수준인 250억원을 들여 매입해 8개월 만에 160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허 사장은 "M&A에선 향후 전망도 중요하지만 적기에 빠르게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타이밍론'을 제시했다. 그는 "2003년 현대석유화학 인수 때도 1년만 늦었으면 (피인수자 측의 독자생존으로) 인수를 못했거나 훨씬 많은 금액을 치러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파키스탄 M&A도 함께 추진하던 일본 마루베니상사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인수 시기를 미루자고 했지만,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밀어붙인 게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화공과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재무에도 밝아 생산과 관리 면에서 두루 경영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해외로 해외로…

허 사장은 파키스탄과 영국 공장 모두 증설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정부와 투자조건이 조율되면 4억~5억달러를 들여 80만~100만t 규모의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인도,이란,중국과의 접경 지역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데다 인구도 1억8000만명으로 많아 잠재력이 큰 곳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서는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생산량을 연간 20만t 늘릴 방침이다. 허 사장은 "중국과 중동 등에서도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며 "아세안에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이 관심 지역"이라고 말했다.

조재희/윤성민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