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때 참석했던 일본 업체 관계자들의 휴대폰이 모두 불통입니다. 그 업체 사장의 생사도 모릅니다. "(H사)

"거래업체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어요. 위성사진을 보니 회사 건물이 물에 휩쓸린 것으로 보입니다. "(D사)

일본 지진에 따른 국내 중소기업들의 피해 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타격을 입은 업체들은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직격탄을 맞은 일본 동북부의 미야기현과 이와테현,후쿠시마현 지역 업체들과 거래를 하던 곳들이다.

혈압기 등 소형 의료기기를 만드는 H사는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한 업체와 한 달 전 2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지만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일반전화는 물론 회사 대표 등 관계자들과 4일째 연락이 안 닿고 있다. 수출은커녕 이들의 생사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H사 관계자는 "이 일본 업체는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센다이공항 인근에 있다"며 "TV 화면에 비친 센다이시 상황을 보면 회사의 정상 가동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 업체들과 거래하던 국내 수산물 수입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 업체들은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에서 주로 고등어와 생태,꽁치,참치 등을 수입해왔다. 하지만 이번 피해로 거래가 전면 중단된데다 다른 곳에서 수입하려고 해도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센다이 업체로부터 고등어를 공급받아온 D식품의 관계자는 "거래업체가 전화를 받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도 회신도 안된다"며 "센다이항에 위치해 있는데 위성사진을 보니 이번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생태를 수입해온 D수산 관계자는 "거래업체 관계자와 4일 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센다이항 인근에 있던 냉동창고와 사무실이 아예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른 지역에서 수입을 하고 있는 국내업체와 거래를 하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1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일본 지진피해대책반을 구성한 지 하루 만에 중소기업 피해상황 60여건을 접수받았다. 반신욕기를 수출하는 J사는 일본 거래처로부터 수입중단 통보를 받아 36만달러어치가 창고에 묶이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 거래처가 당분간 반신욕기 등 기호품보다는 생활필수품 수입에 치중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수년간 거래하던 거래처를 하루아침에 잃었다"고 토로했다.

일본과 거래가 긴밀한 자동차부품 업체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미쓰비시에 엔진부품을 수출하는 C사는 수출이 중단되면서 100만달러 상당의 손실을 입게 됐다. S사는 일본에서 전자 클러치용 볼 베어링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했는데 부품 조달이 전면 중단되면서 공장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이 밖에 전자제품과 소비재 등을 일본에 판매하던 국내 중소기업들도 현지 매장 수십여곳이 문을 닫는 바람에 타격을 입고 있다. 한 안경 업체 관계자는 "일본 체인점 60여곳이 지진피해로 문을 닫아 300만달러 정도의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