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역사는 인수 · 합병(M&A)의 역사다. '조 · 상 · 제 · 한 · 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얘기되던 5대 시중은행은 간판을 내렸다. 대신 국민 · 우리 · 신한 · 하나은행의 4강 체제가 구축됐다.

이 과정에서 자산도 불어났다. 1997년 말 542조5528억원이던 은행(특수은행 제외) 총자산은 2008년 말 1306조2146억원으로 140.8%(763조6618억원) 늘었다. 2009년부터는 아니다. 2009년 말 총자산은 1249조6546억원으로 전년보다 4.3%(56조5600억원)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때문이긴 하지만 은행 성장세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 만큼 국내 은행들이 세계 50대 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해외 영업에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M&A 효과로 괄목할 만한 자산 증대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M&A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국민 · 주택 · 장기신용 · 동남 · 대동은행이 합쳐진 국민은행의 경우 합병 전인 1997년 말 이들 은행의 총 자산 합계는 114조7000억원이었다. 작년 말 통합 국민은행의 총 자산은 271조원으로 155조원 늘었다. 대형화로 인해 자산증가속도가 빨라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상업 · 한일 · 평화은행이 통합된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1997년 말 총 자산 합계는 102조원이었으나 작년 말에는 240조원으로 불어났다. 조흥 · 신한 · 동화 · 충북 · 강원은행이 합쳐진 신한은행도 1997년 말 106조5000억원에서 작년 말 234조원으로 증가했다. 서울 · 하나 · 보람 · 충청은행이 합친 하나은행도 1997년 말 74조4000억원에서 154조원으로 커졌다. 이 기간 동안 국내 경제규모가 빠르게 커진 덕분도 있지만 M&A 효과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계 50위 은행의 답은 해외

2009년 말 UAE(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전을 수주할 때다. UAE정부는 공사이행을 위한 은행 보증서를 요구했다. '신용등급 AA이상이며,세계 50대 은행일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조건을 충족하는 은행이 국내엔 없었다. 부랴부랴 SC제일은행을 통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보증서를 제출했지만 상당액의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은행의 몸집이 커졌지만 세계시장에선 아직 아니다. 2009년 말 총자산이 2440억달러로 가장 많은 우리금융지주의 세계 순위는 고작 79위다. 세계 50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의 총 자산(4350억달러)보다 1910억달러(약 210조원) 적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자산증가세는 주춤해졌다. 국민은행 총자산은 2008년 말 274조원에서 지난해 말 271조원으로 감소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249조원에서 240조원으로,신한은행도 249조원에서 234조원으로 줄었다. 하나은행도 162조원에서 154조원으로 감소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무리하게 자산을 늘렸다가 금융위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한다며 대출을 회수했고 부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과거와 같은 급격한 자산 증가가 어렵다고 보고 국내외 M&A나 해외 진출을 통한 자산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 답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나+외환' 시너지 얼마나

외환은행은 외환 및 해외 영업이 앞서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국내 외환거래 시장 점유율 46%,수출입금융 점유율 29%,외화예수금 점유율 40%,외화대출금 점유율 18%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 점포도 27개로 가장 많다.

이러다보니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한 관계자는 "다른 요인을 제외하고 금융산업측면에서만 따질 경우 국내 프라이빗뱅킹(PB)에 노하우를 가진 하나금융과 해외 영업이 강점인 외환은행의 결합은 시너지면에서 괜찮은 결합"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이런 강점을 가진 외환은행의 조직과 인력을 활용,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폐쇄한 미국 현지법인을 재건하기로 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우리나라 교포은행이나 베트남 등 아시아계 교포은행을 인수할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지분 참여한 지린은행을 통해 동북 3성을,하나은행 중국법인을 통해 베이징 산둥 상하이 등 중동부지역을 공략할 방침이다. 인도 러시아 브라질 칠레 등 신흥개발국에서는 외환은행 지점과 현지법인을 활용하기로 했다.

◆KB · 우리 · 신한도 해외 비중 20% 목표

KB금융 우리금융 신한금융 등도 현재 5~7%인 해외 영업 자산 비중을 앞으로 20%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2007년 개설한 베트남 호찌민 사무소를 올해 6월 지점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중국 광저우 지점에서는 4월부터 위안화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KB캄보디아은행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현지 우량기업과 개인 고객을 상대로 예금 대출 및 외국환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인도 뭄바이와 베트남 하노이에 사무소를,일본 오사카에 지점을 추가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일본 베트남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신흥개발국 시장을 개척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올해 베트남에서 신한은행이 신한카드와 공동으로 카드사업을 진행할 계획을 세운 데서 보듯이 계열사들과의 동반 진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인도 첸나이와 브라질 상파울루 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하고 호주 시드니 지점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지점을 신설할 예정이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