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 엑소더스"…교민 80여명 단체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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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10분거리 공항 수시간 걸려
이틀간 열도 횡단 탈출 하기도
총영사관 집결 노약자순 귀국길
이틀간 열도 횡단 탈출 하기도
총영사관 집결 노약자순 귀국길
"한국에 오니 살았다는 생각밖에 안 나네요. "
15일 낮 일본 센다이에서 거주하다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서문식 씨(41)는 가족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두 아들과 함께 귀국한 그는 "지진 당시 연구실에 있었는데 무너지면 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쓰나미가 오기 직전 가족과 함께 마을을 벗어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센다이에서 2년째 체류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는 그는 "자동차로 센다이를 탈출하면서 기름이 모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서씨와 80여명의 센다이 교민이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인 센다이에서 교민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교민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모두 급하게 빠져나온 듯 간편한 옷차림에 짐도 단출했다.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자 울음을 터뜨렸다. 일부 교민은 가족들을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이날 입국자 대다수는 노인이나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학생들이었다.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에 대피한 인원은 200명가량이며 영사관 측에서 노약자 우선으로 귀국 순번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영사관에 모여 지난 14일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이 지원한 버스를 타고 니가타로 이동,하룻밤을 머문 뒤 이날 오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부는 니가타까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온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서씨는 영사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가족을 데리고 탈출한 경우였다. 서씨는 일본 열도를 동서로 횡단한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지진이 일어난 날 그나마 자동차에 연료가 가득 차 있어 이동할 수 있었던 서씨 가족은 일단 서북부의 야마가타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동차 연료가 다 떨어졌다. 주유소를 찾았지만 차 한 대에 20ℓ씩만 채워줬다. 결국 이틀 동안 주유소를 전전하며 기름을 채운 뒤에야 니가타로 향할 수 있었다.
센다이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나토리에 살았다는 김애리 씨(29 · 여)는 지진이 나자마자 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고 한다.
"300여명이 대피해 있던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어요. 식량이 부족해 저녁식사 한 끼만 배급됐어요. " 김씨는 그 흔한 먹을거리조차 찾기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낮에는 사람들이 물과 컵라면,건전지를 사기 위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3~4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영사관까지는 걸어서 1시간.차량에 연료가 다 떨어졌던 김씨는 "동네 대표로 순찰하던 주민에게 기름을 조금 얻어 겨우 영사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선이 유출되는 것에 대해 "방사선은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피부에 와 닿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다들 원전사고가 난 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려 했다"고 전했다.
이날 공항에 도착한 일부 교민들은 가족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으며 마중 나온 가족들도 사지에서 벗어난 가족들의 얼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센다이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최대 도시이자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이 지역은 거리마다 느티나무가 늘어서 있어 '숲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서울 크기의 넓은 땅에 인구는 서울의 10분의 1도 안돼 노후를 보내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
15일 낮 일본 센다이에서 거주하다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서문식 씨(41)는 가족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두 아들과 함께 귀국한 그는 "지진 당시 연구실에 있었는데 무너지면 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쓰나미가 오기 직전 가족과 함께 마을을 벗어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센다이에서 2년째 체류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는 그는 "자동차로 센다이를 탈출하면서 기름이 모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서씨와 80여명의 센다이 교민이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인 센다이에서 교민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교민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모두 급하게 빠져나온 듯 간편한 옷차림에 짐도 단출했다.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자 울음을 터뜨렸다. 일부 교민은 가족들을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이날 입국자 대다수는 노인이나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학생들이었다.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에 대피한 인원은 200명가량이며 영사관 측에서 노약자 우선으로 귀국 순번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영사관에 모여 지난 14일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이 지원한 버스를 타고 니가타로 이동,하룻밤을 머문 뒤 이날 오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부는 니가타까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온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서씨는 영사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가족을 데리고 탈출한 경우였다. 서씨는 일본 열도를 동서로 횡단한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지진이 일어난 날 그나마 자동차에 연료가 가득 차 있어 이동할 수 있었던 서씨 가족은 일단 서북부의 야마가타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동차 연료가 다 떨어졌다. 주유소를 찾았지만 차 한 대에 20ℓ씩만 채워줬다. 결국 이틀 동안 주유소를 전전하며 기름을 채운 뒤에야 니가타로 향할 수 있었다.
센다이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나토리에 살았다는 김애리 씨(29 · 여)는 지진이 나자마자 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고 한다.
"300여명이 대피해 있던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어요. 식량이 부족해 저녁식사 한 끼만 배급됐어요. " 김씨는 그 흔한 먹을거리조차 찾기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낮에는 사람들이 물과 컵라면,건전지를 사기 위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3~4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영사관까지는 걸어서 1시간.차량에 연료가 다 떨어졌던 김씨는 "동네 대표로 순찰하던 주민에게 기름을 조금 얻어 겨우 영사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선이 유출되는 것에 대해 "방사선은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피부에 와 닿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다들 원전사고가 난 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려 했다"고 전했다.
이날 공항에 도착한 일부 교민들은 가족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으며 마중 나온 가족들도 사지에서 벗어난 가족들의 얼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센다이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최대 도시이자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이 지역은 거리마다 느티나무가 늘어서 있어 '숲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서울 크기의 넓은 땅에 인구는 서울의 10분의 1도 안돼 노후를 보내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