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잇따른 폭발이 사람들을 패닉에 몰아넣고 있다. 원전 폭발과 방사성 물질의 유출은 분명 충격적이고 심각한 사태다. 매스컴들은 '치명적' 피폭(被曝),'죽음의' 낙진(落塵)을 말하면서 두려움을 부추기고 사람들의 '핵 알레르기'를 자극한다.

체르노빌의 악몽까지 되살아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fact)에 기초한 진실은 묻힌다. 오해와 불신,과장된 억측과 괴담이 난무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확대재생산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확실히 예상보다 훨씬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격납용기 손상 때문이다. 격납용기는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보통 1m가 넘는 두께의 콘크리트 및 철판 구조물이다. 원자로가 녹아내려도 방사성 물질을 가둬 놓도록 만들어졌는데 그게 파손됐다면 방사선의 외부 유출을 의미한다. '제2의 체르노빌'을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체르노빌은 어떤 사고였나. 1986년에 발생한 구(舊)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은 최악의 설계,최악의 안전관리,최악의 사후조치가 결합된 최악의 원전 재앙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방사성 물질을 차폐시킬 격납용기가 아예 없는 구조였다. 원자로가 터졌는데도 주민들을 대피시킨 것은 사흘이나 지난 뒤였다. 발전소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28명이 사고발생 몇 주 만에 사망했고 수백명이 상해를 입었다. 방사성 물질은 이 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킨 뒤 수천㎞ 먼 곳까지 퍼져 나갔고,주민 22만여명은 다른 지역으로 영구 이주했다.

체르노빌 사태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심층 조사와 연구가 이뤄졌다. 사고 직후 수만명이 사망했으며 또 수만명이 암 발병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온갖 주장이 나왔지만 조사 결과들은 모두 의외였다. 원전 사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 14년 뒤인 2000년 유엔 방사선위원회는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암발생률,사망률,또는 악성 증상이 증가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피해복구 인력 집단에서도 피폭량 증대에 따른 백혈병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된 경우 질병의 위험은 존재하지만,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방사선이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직접 방사선에 노출돼 피해를 입은 사망자 수는 56명,갑상샘암 사례는 2000여건 발생했다. 아직 피폭으로 인한 백혈병 또는 선천적 장애의 수치는 늘지 않고 있다. 추측한다면 방사선이 유발한 잠복성 암 때문에 일반 인구의 통계적 표준수치를 초과하는 약 4000건의 사망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할 수 있다. '

이것이 체르노빌 사태 이후 검증된 사실이다. 물론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가장 완벽한 방어시스템을 갖췄다는 원전의 안전신화는 무너졌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반핵(反核)단체들은 원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 지금까지 원자력만큼 안전하게 운영된 기술은 없다는 점 또한 명백히 입증된 사실이다.

원전이 위험해서 안된다고 한다면 오히려 인류 최악의 산업재해였던 1984년 인도 보팔 참사를 얘기해야 한다. 그 해 12월3일 새벽 인도 중부 도시 보팔의 유니언카바이드 살충제 공장에서 27t이 넘는 메틸이소시안염 등 맹독성 가스가 흘러나왔다. 3일 만에 3500여명이 죽고 1994년까지 2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도 아직 15만여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유독물질을 다루는 수없이 많은 화학공장을 모조리 없앨 건가.

추창근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