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선 누출이 예측 불허 상황으로 치닫자 현지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이 속속 떠나거나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고 있다. 일부 외국계 회사들은 도쿄 주재원들을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이동시키거나 아예 귀국시켰다. 한국 기업의 도쿄 주재원들도 상당수가 가족들을 귀국시켰고, 일부 회사는 오사카 등으로 주재원들을 대피시켰다. 일본의 대지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외국 기업들의 일본 내 비즈니스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국 기업 안전 지역으로 피신

독일의 소프트웨어 업체 SAP는 도쿄사무소 등에 근무하는 직원 1100명과 가족들을 남부의 가나가와현과 시즈오카현 등으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호텔 등에서 인터넷을 통해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온도 100여명의 도쿄 직원을 오사카 등지로 대피시켰다. 인도의 정보기술(IT) 대기업인 인포시스는 지난 15일 일본에서 근무하는 인도인 종업원 250여명과 가족을 귀국시키기 시작해 16일 철수를 완료했다.

독일의 타이어 · 자동차부품 제조기업인 콘티넨탈은 직원 100여명과 가족들을 16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도 도쿄지사 직원들을 15일 오사카로 이동시켰다.

아시아와 유럽 항공사 상당수가 수십편의 도쿄편 운항을 중단하거나 노선을 변경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14일 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반경 30㎞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은 최소 이번 주말까지 기존 도쿄행 항공기를 남부의 오사카와 나고야로 돌리기로 했다. 중국 에어차이나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도쿄로 가는 항공기 운항을 취소했다. 대만의 에바항공도 이달 말까지 도쿄와 삿포로 운항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각국 정부 자국민 철수시켜

각국 정부도 위험지역에 있는 자국민들을 귀국시키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피해가 큰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4개 현에 수십대의 대형 버스를 보내 중국인들을 철수시켰다. 4개 현에 사는 중국인 약 3만명 중 희망자들을 도쿄 인근 나리타공항이나 니가타공항을 통해 귀국시켰다.

태국대사관도 버스 2대를 미야기현 센다이시로 파견해 자국민의 귀국을 돕고 있다. 센다이시에는 피해를 당한 태국인 67명이 태국식당에 피신해 있었다. 인도 정부도 원전 폭발로 불안해 하는 자국민을 귀국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아직 신중한 자세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시에 따르라"는 지침만 자국민들에게 전달했다. 적극적인 피난 권고는 하지 않고 있다.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일본에서 패닉(공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당분간 일본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장성호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