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택시-기차로 20시간 넘어 도쿄 도착…"지진 무서움 절감"

창원대학교 학생인 정수일(27)씨는 지난주말까지만 해도 교환학생 신분으로 대지진이 강타한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도호쿠(東北)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정씨는 대지진이 발생한 이틀 뒤 센다이시를 탈출해 꼬박 하루동안 버스와 택시, 신칸센 등 현지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지방도를 전전한 끝에 천신만고 끝에 도쿄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어렵사리 비행기 표를 구해 마침내 15일 저녁 김포공항에 도착해 한국땅을 밟으면서 탈출을 끝냈다.

16일 오후 창원대학교에 들른 정씨는 지진이 발생했던 순간과 센다이시를 탈출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지진이 발생했던 지난 11일 오후 3시 무렵 정씨는 대학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르릉 쾅~"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땅이 들썩였고 이어 건물들까지 흔들렸다.

"운동장 주변에 건물이 없어 무너진 건물에 깔릴 가능성은 없었지만 땅이 갈라질까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이나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학생들 조차 처음 경험할 정도의 큰 흔들림이었다고 하더군요"
곧바로 대학 기숙사로 돌아온 정씨는 학교 관계자들의 지시에 따라 인근 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로 거처를 옮겼다.

센다이 시내 건물들은 다행히 내진설계가 잘 돼 있어 건물붕괴는 없었지만 전기와 수도가 끊겼고
전화마저 불통돼 휴대전화로 수백번이나 국제전화를 시도했지만 고향의 가족들과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13일 오전 센다이시 한국 총영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대피소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대피소 생활 첫날 단 한차례 간단한 식사가 나온 뒤부터는 급식이 끊겨 초콜릿, 비스킷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고 밤에는 기온까지 내려가 덜덜 떨어야 했다.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이 있는 식사는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13일 센다이 시내 총영사관에서 처음으로 맛봤다.

여진이 추가로 발생하는 등 언제 어디서 대지진이 또다시 발생할 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정씨는 당초 오는 8월말까지 1년간 예정된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돈이 얼마나 들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일단 센다이시를 벗어나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정씨는 통장에 들어있던 20만엔 가량의 돈을 몽땅 인출해 13일 저녁 동해와 맞닿아 있으면서 우리나라행 항공기가 운항하는 공항이 있는 니가타(新潟)현을 목표로 센다이 탈출을 시작했다.

평소 도쿄에서 센다이까지는 약 400여㎞ 거리로 신칸센을 타면 1시간30분, 비행기로는 1시간만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진으로 센다이 공항이 폐쇄된데다 선로 역시 곳곳에서 끊기면서 일반적인 루트는 포기하고 내륙지역인 야마가타(山形)현을 거쳐 일본열도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단하는 니가타행을 택했다.

니가타에 도착해서도 표를 구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도쿄를 목표로 다시 버스에 올랐지만 일부 고속도로가 통제되는 등의 문제로 지방도를 이용해야 할 만큼 일본 열도 곳곳에 지진의 충격이 미치고 있음을 절감했다.

결국 센다이에서 출발해 버스와 택시를 각각 두번씩, 신칸센은 한번을 이용해 꼬박 20시간이 넘게 걸려 14일 저녁무렵 도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씨는 "지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절감했다"면서도 "사람들이 공포에 떨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줄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일본 사회의 힘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sea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