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기현 다가조..재일교포 60여가구 사상자 없는 듯

17일 오전 9시께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가조(多賀城)시 해변 근처 119구조대의 구조 현장.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내려간데다 강풍에 눈까지 겹쳐 한겨울을 생각나게 하는 극심한 추위가 구조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곳의 강추위는 임시로 설치해놓은 텐트 안의 페트병 물이 밤새 얼어버린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텐트가 무너지거나 날아가겠다 싶을 정도의 강한 바람도 대원들을 괴롭힌다.

이날 강추위 속에 구조대들이 맡은 임무는 화재가 난 정유 공장의 인명 구조다.

쓰나미 직후부터 피어오른 연기가 그치지 않은 다가조시 바닷가 정유공장에서는 오전 한 때 불길이 치솟았다.

구조대는 마구 뒤엉켜 있는 건물 잔해와 차량,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생존자 수색 작업을 펼쳤다.

추위와 위험 속에 사투를 벌인 결과 남성 2명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국적이 일본인지, 한국인지는 몰라도 두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할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은 구조대원들이 계속 강추위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연합뉴스가 119 구조대를 따라 전날에 이어 이틀째 찾아간 다가조시는 강진과 쓰나미 피해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다가조시는 바닷가에 가까운 쪽부터 공업단지, 상업지구, 주택지구 순으로 이어진다.

해안에서 3∼4km 반경 안의 공업단지와 상업지구가 쓰나미 피해를 집중적으로 당한 지역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차량이 종잇장처럼 짓이겨진 채 곳곳에서 나뒹굴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등을 생산하는 소니 공장을 비롯해 각종 공장에서 나온 제품과 건물 잔해가 어지럽게 뒤섞인 채 널브러져 있는 등 공업단지와 상업지구는 여전히 망가진 상태로 남아있었다.

주택지구는 직접 쓰나미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전기ㆍ통신 등 사회기반 시설이 파괴되면서 주민들이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특히 "도시의 어디를 가도 기름이 부족한 게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기름 부족으로 관용차나 피해 복구 차량을 제외하고는 도로에 승용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거리는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간혹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어디론가 향하는 주민이 눈에 띌 정도다.

대부분 식료품, 식수, 유류를 구하려고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는 이들이었다.

시내 중심부의 대형 슈퍼마켓에는 주민들이 입구부터 수백m 길이로 줄을 지어 서서 추위에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슈퍼마켓이 3∼4시간만 문을 여는데다 판매 품목도 제한돼 있어 식료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게 한 주민의 입에서 나온 하소연이다.

기름은 1인당 10ℓ로 판매량이 제한돼 있는 데다가 문을 연 주유소도 거의 없어 기름을 사기 위한 행렬은 1km를 훌쩍 넘어섰다.

다가조시 상하수도부 건물 앞에는 식수를 얻으려고 어린이와 노인들까지 거리로 나와 길게 늘어섰다.

족히 수백m는 돼 보이는 긴 행렬이다.

이들은 일반 식수용 탱크 뿐 아니라 보온병, 500㎖짜리 페트병 등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들고나온 듯 했다.

당국은 다가조시 수영장 등에 대피소를 마련했지만 이재민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설이 충분치 않아 일반 주민이 운영하는 사설 피난소가 등장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가조시에 사는 60여 가구의 재일동포 중 사상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거리에서 만난 재일동포 2세 박상지(53)씨는 "동포들 중에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동포들의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지진과 쓰나미가 밀려올 당시 주택가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가조<미야기현>연합뉴스) 박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