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트리뷴지가 '부자 리스트'를 처음 발표한 1892년 미국의 백만장자는 4047명에 불과했다. 넓은 땅에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에도 부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보스턴컨설팅그룹의 '2010년 세계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미국에서 유동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가진 가구는 472만에 달했다.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증가다. 전 세계 백만장자는 1120만 가구나 됐다.

과거 한국에선 돈보다는 벼를 얼마나 거둬들이느냐로 부자를 구분했다. 1년 수확량이 1000석이면 천석꾼,1만석이면 만석꾼으로 불렸다. 한석은 벼 한 섬,쌀로는 두 가마이니 천석꾼은 1년에 쌀 2000가마,만석꾼은 2만가마를 수확하는 셈이다. 1930년 일제의 조사자료를 보면 조선사람 중 천석꾼은 750여명,만석꾼은 4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가 배를 곯던 시절이다. 그러나 2009년 현금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은 대략 13만2000명(메릴린치 · 컨설팅 업체 캡제미니 조사를 토대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추정)으로 늘어났다. 눈부신 경제성장 덕이다.

부동산 등 보유 재산을 모두 합한 부자의 기준은 뭘까. 부자학연구학회는 현금자산 10억원을 포함해 총재산 30억~50억원 정도를 가진 사람을 부자로 본다. 스탠다드차타드와 컨설팅업체 스콜리오파트너십이 한국인 201명 등 아시아권 부자 1792명을 인터뷰한 자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 고소득층이 이루고자 하는 부의 목표가 500만달러(약 56억원)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부자는 또 지위 향상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를 선택할 때 지위를 고려하는 사람이 81%나 되고,투자상품을 고를 때도 수익성뿐 아니라 주차대행 같은 특별 대접이 있는지 따진다는 것이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부자들이 주로 재산 증식에 관심을 가진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부자는 많은 사람의 밥상'이란 속담이 있다. 부자가 있으면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엔 부자를 질시하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 논란이 되는 이익공유제만 해도 그렇다. 부자를 편견없이 보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