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현정빌딩 4층.컴퓨터 열기로 후끈한 사무실 한쪽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송재경 씨(44)가 설립한 엑스엘게임즈의 사무실 풍경이다. 직원들이 결과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다하자고 격려하기 위해 송 사장이 직접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학 석사를 거쳐 1994년 대학 동기 김정주씨와 넥슨을 공동 창업했던 그는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온라인게임계의 거두로 꼽힌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 나라'와 MMORPG의 바이블로 불리는 '리니지'를 만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신작게임 '아키에이지' 개발에 여념이 없다.

▼5년째 '아키에이지'를 개발 중인데.

"다른 게임보다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리니지'를 만들 때는 소수 인원으로 짧은 기간에 만들었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나 '테라'만 해도 개발기간이 길었다.

'리니지'는 처음 2명이 만들었고 엔씨소프트로 가서는 8명이 만들어 상용화했다. 그 인원으로 개발 기간도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옛날 얘기다. 당시 콘텐츠 양은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의 한 개 존보다도 못한 수준이기도 했다. "

▼개발 인원은 얼마나 되나.

"개발자만 110명가량이다. 엔씨소프트 출신이 많은 편이다. 엔씨소프트 시절 따르던 일부 사람들이 합류했다. 퍼블리싱을 직접 하기 때문에 마케팅 등의 인력을 포함하면 직원 수는 200명쯤 된다. "

▼'아키에이지'에 거는 기대는.

"'리니지''바람의 나라'는 멋모르고 만들었다. 이후 나온 MMORPG들을 열심히 플레이해보고 분석하고서 좀 알고 만드는 게 '아키에이지'다. 새로운 것을 추구해 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유저들이 소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상세계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유저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다. 사실 (리니지를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개발 여력이 없어 정해진 콘텐츠만을 제공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유저들이 잘 놀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유저들이 게임의 빈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

▼이런 시도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은.

"두 차례의 비공개서비스에 일부 공개했다. '재미있다''신선하다'는 반응이었다. '리니지'와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겉모습의 차이다. 리니지는 '옛날 옛적에' 만든 2차원(D) 게임이다. '아키에이지'는 최신 기술을 접목해 3D로 제작,실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등 기술적 발전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저들이 콘텐츠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리니지에서는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성을 둘러싸고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키에이지에서는 유저들이 직접 원하는 위치에 성을 짓고 공성전을 할 수 있고 그 성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울 수도 있다. "

▼송재경이 추구하는 MMORPG란.

"사실 몇 개 만든 게 없어서….굳이 자평하자면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가상세계를 추구해온 것이 지금까지 만든 게임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유저들에게 이것을 너무 강요하면 불편해할 수 있다. 게임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먼저다. 이 때문에 마음속에 묻어 두고 있는 가상현실 구현을 다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

▼'세컨라이프'를 추구한다는 뜻인가.

"나중에 좀 더 넉넉해지고 상업적 성공을 개의치 않게 된다면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다. '세컨라이프'는 신기하기는 한데 한두 시간 정도 돌고 나면 여기서 매일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어쨌든 그런 요소를 차용해 게임으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게임의 미래는.

"과거에 게임을 하려면 오락실 같은 장소에 모여야 했다. 지금은 서울 부산 등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다. '장소'라는 한계를 극복하도록 해준 것이 온라인게임이다. 이제는 '시간'이라는 장벽도 사라졌다. '팜빌' 같은 소셜게임(SNG) 덕분이다. 아무 때나 접속해 건물을 짓고 밭을 갈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결말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이 게임 발전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본다.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시나리오나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미 기술이나 그래픽이 이를 뒷받침해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