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한국의 이건희와 중국의 장인(張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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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노력의 대가로 얻은 지위다. 부자와 부자의 아이들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라."
자본주의 경제학을 가르치는 어느 대학의 강의실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던 지난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들려온 소리다. 장인(張茵 · 54) 주룽지업(玖龍紙業) 회장은 "모든 기업은 창업자들의 노력과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고,부는 이 과정의 결정체"라며 "부자 중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많고 이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의 정치행사에서 부(富)를 옹호하는 것을 보는 느낌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그가 정협위원이라고 해도 빈부격차의 해소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부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장 회장이 380억위안(6조4600억원)을 보유한 중국의 세 번째 부자이기 때문에 부자의 편을 들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문화혁명 때 반동분자로 몰려 감옥에 간 아버지를 대신해 집의 맏이로서 가계를 책임져야 했고,그래서 19세의 나이에 월급쟁이로 출발한 뒤 회사를 차리고 세계 최대의 제지회사를 키워낸 그로서는 땀을 흘려 얻은 부와 명예가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그 피나는 노력이 자신의 아이들을 '푸얼다이(富二代 · 부자 2세)'라고 조롱받도록 만든 것에 대한 항의이기도 한 것 같다.
장 회장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10일 한국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한마디했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사회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창출한 이익을 제3자와 의무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발언이었다.
장 회장이나 이 회장의 말은 서로 다르지만 속 뜻은 시장경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양국 정치권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중국에선 장 회장의 발언이 관영 신화통신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신화통신은 관영매체로 사실상 정부의 선전도구다. 장 회장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없이 신화통신에 기사가 실렸다는 것은 중국의 위정자들이 그의 발언을 중요하게 접수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화통신은 개인이 영원히 토지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한 70년 보유제한제를 폐지해 완전한 토지사유화를 허용해야 한다는 쭝칭허우(宗慶后) 와하하 회장의 발언도 가감없이 보도했다.
반면 한국에선 난리가 났다. 초과이익 공유제가 시장경제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이 회장이 나섰다는 것에서부터 정치권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결국 보궐선거를 둘러싼 힘싸움으로 번지는 볼썽사나운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불과 30년 전에 자본주의의 실험을 시작한 중국은 이제 세계 최강국으로 훌쩍 커버렸다. 한때 급속한 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다가 제자리 걸음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장 회장과 이 회장의 발언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이만큼 앞으로 한국과 중국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베이징=조주현 forest@hankyung.com
자본주의 경제학을 가르치는 어느 대학의 강의실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던 지난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들려온 소리다. 장인(張茵 · 54) 주룽지업(玖龍紙業) 회장은 "모든 기업은 창업자들의 노력과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고,부는 이 과정의 결정체"라며 "부자 중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많고 이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의 정치행사에서 부(富)를 옹호하는 것을 보는 느낌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그가 정협위원이라고 해도 빈부격차의 해소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부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장 회장이 380억위안(6조4600억원)을 보유한 중국의 세 번째 부자이기 때문에 부자의 편을 들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문화혁명 때 반동분자로 몰려 감옥에 간 아버지를 대신해 집의 맏이로서 가계를 책임져야 했고,그래서 19세의 나이에 월급쟁이로 출발한 뒤 회사를 차리고 세계 최대의 제지회사를 키워낸 그로서는 땀을 흘려 얻은 부와 명예가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그 피나는 노력이 자신의 아이들을 '푸얼다이(富二代 · 부자 2세)'라고 조롱받도록 만든 것에 대한 항의이기도 한 것 같다.
장 회장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10일 한국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한마디했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사회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창출한 이익을 제3자와 의무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발언이었다.
장 회장이나 이 회장의 말은 서로 다르지만 속 뜻은 시장경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양국 정치권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중국에선 장 회장의 발언이 관영 신화통신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신화통신은 관영매체로 사실상 정부의 선전도구다. 장 회장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없이 신화통신에 기사가 실렸다는 것은 중국의 위정자들이 그의 발언을 중요하게 접수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화통신은 개인이 영원히 토지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한 70년 보유제한제를 폐지해 완전한 토지사유화를 허용해야 한다는 쭝칭허우(宗慶后) 와하하 회장의 발언도 가감없이 보도했다.
반면 한국에선 난리가 났다. 초과이익 공유제가 시장경제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이 회장이 나섰다는 것에서부터 정치권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결국 보궐선거를 둘러싼 힘싸움으로 번지는 볼썽사나운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불과 30년 전에 자본주의의 실험을 시작한 중국은 이제 세계 최강국으로 훌쩍 커버렸다. 한때 급속한 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다가 제자리 걸음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장 회장과 이 회장의 발언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이만큼 앞으로 한국과 중국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베이징=조주현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