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5년의 일이다.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인질로 잡은 국제연합군 370여명 중 3명을 탄약고 쇠기둥에 묶어 놓고 언론에 공개했다. 나토군 공격을 막기 위해 사람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나토군은 어쩔 수 없이 공습 강도를 낮췄다. 1991년 걸프전에선 궁지에 몰린 이라크가 억류한 쿠웨이트인들을 군사시설 주변에 방패로 내세웠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세 살짜리 아이까지 인간방패로 동원했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나 포로를 방패로 쓰는 전략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 말기 스파르타가 공격해오자 아테네 부녀자들이 성을 둘러쌌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도시나 마을을 정복할 때마다 학살을 자행하면서도 일부 주민은 살려뒀다. 다음 싸움에서 앞장 세워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6 · 25전쟁 때 낙동강 전투에서도 인간방패가 등장한다. 국군과 미군의 공격을 막으려 북한군이 피난길에 나선 아녀자와 노인들을 앞세웠다.

인간방패는 상대방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뜨려 자신을 지키려는 비열한 수단이다. 전쟁 중이라도 죄없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공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작전이 전투원들 간에 이뤄지고 민간인은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헤이그 조약은 사문화됐다. 제네바 협약도 '전쟁 시 민간인 보호'를 명문화하고 있으나 인간을 방패로 삼는 만행은 여전하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폭력의 시대'라는 책에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모호해진 점을 현대 전쟁의 특징으로 꼽는다. 2차 세계대전의 민간인 희생자 수는 2500여만명으로 군인 전사자보다 많았다는 통계도 있다.

수백명의 리비아 여성과 어린이들이 트리폴리의 카다피 은신처 주변에 인간 방패로 배치된 모양이다. 많은 막사와 요새화된 벽,철조망,미로를 지나야 나타나는 은신처 주변을 수백명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카다피 친위부대와 정부군 가족이란다. 하지만 카다피가 어느 곳에 피신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연합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카다피의 지휘본부가 파괴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간을 방패로 삼아 전쟁에서 승리한 예는 별로 없다. 설사 이긴다 해도 민심은 떠나기 십상이다. 여성과 어린이의 생명까지 담보로 내세운 카다피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