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화하고 있는 이공계 기피의 원인으로는 과학기술계 내부의 폐쇄성과 명문대 등 학벌 위주의 채용 관행도 한몫한다. 일본 최고 권위의 종합과학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에 최근 채용된 조태호 특별연구원(37 · 사진)은 "학벌과 논문 게재 수 등으로만 능력을 판단하는 국내 과학기술계 풍토가 계속되는 한 이공계 기피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융합형 연구자다.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출신이지만 학부시절부터 모션 그래픽 소프트웨어 '플래시'에 미치다시피했다. 학내 벤처동아리를 만들고 모교 출신 유명 벤처기업인들을 쫓아다니며 친분을 쌓는가 하면,인도 유럽 등을 누비며 현지 소프트웨어 기업을 탐방했다. 정부 산하단체에서 주최하는 인터넷 관련 대회에는 거의 다 참가해 상위권에 입상한 경험도 있다. 결국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졸업 후 글로벌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매크로미디어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외국을 누비고 다닌 경험과 영문학 전공 지식은 외국계 기업에서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2003년 대학 은사의 추천으로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에 선발돼 도쿄의과치과대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7년여 만에 '분자생명정보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플래시에 전념했던 엔지니어링 경험을 분자생물학적 지식과 융합해 단백질을 시각적으로 모델링하는 기술로 발전시킨 것이다. 조교수로 재직하던 작년 말에는 미 국립보건원이 후원하는 세계단백질구조예측대회에 참가해 174개 참가팀 가운데 2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던 그를 받아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조 연구원은 "소위 명문대와 지방 소재 대학,전문대까지 수십곳에 원서를 냈지만 전부 떨어졌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취업 희망을 완전히 접은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RIKEN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합격.면접관들은 그의 이력 한줄 한줄에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며 그를 검증했다. 그는 "하루종일 집요할 정도로 묻는 면접관들의 열정이 당황스러웠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앞으로 그는 5년 동안 계약직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매년 혹독한 평가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5년을 무사히 넘긴다면 RIKEN의 종신 연구원으로 재직할 수 있다. 계약직이지만 연봉이 적지 않은 수준이며 주택자금 지원은 물론 직무와 관련된 모든 행정적 처리는 별도 부서가 해준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